희재문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안종창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5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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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안종창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5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35년 안종창의 아들 안정수(安挺洙)가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하겸진(河謙鎭)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안하진(安廈鎭)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8권 4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등에 있다.

내용

권1에 부(賦) 2편, 시 135수, 권2·3에 서(書) 99편, 권4에 잡저 5편, 논(論) 4편, 권5에 서(序) 5편, 기(記) 3편, 발(跋) 4편, 잠(箴)·명(銘)·송(頌)·상량문 각 1편, 축문 5편, 제문 17편, 애사 1편, 권6에 구묘문(丘墓文) 5편, 행장 4편, 권7·8에 부록으로 만장 81수, 제문 41편, 가전(家傳)·행장·묘갈명·묘지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의 「자인부(梓人賦)」는 사람의 인격 도야 과정을 목수가 나무로 좋은 재목을 만드는 데 비유한 것이다.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전국에 산재하여 있는 인물들을 적절하게 참여시키는 것이 조정의 책임이라고 주장하였다. 시의 「각면(却眠)」에서는 공부를 하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졸음이라고 지적하고, 학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졸음을 물리치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영란(咏蘭)」에서는 난초의 모양과 향기의 아름다움보다는 청초한 자태가 군자에 비길 만하다고 하였다.

서(書)의 「상이선생종기(上李先生種杞)」는 스승 이종기에게 학문하는 방법을 질의한 것이다. 「여곽종석(與郭鍾錫)」은 곽종석과 여러 차례에 걸쳐 학문과 시사(時事), 격변하는 세태에 대한 처세 방법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글이다. 「여안태화(與安泰和)」의 별지는 천명도(天命圖)에 관한 것으로, 이황(李滉)이 「하락도(河洛圖)」와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太極圖)」를 보고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내용면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근원적인 면에서는 일호의 착오도 없으며, 이황의 도본이 더 정밀하다고 강조하였다.

「화산록(花山錄)」은 스승 이종기의 문집 교열 관계로 안동에 있는 김도화(金道和)를 방문하여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의 일들을 기록한 사건 일지이다. 이 밖에 학문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만든 「영사재월삭강규(永思齋月朔講規)」와 등백도(鄧伯道)가 자식을 버리고 조카를 구한 일을 논평한 「등백도론(鄧伯道論)」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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