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양법재판소는 국가 간 해양분쟁의 해결을 위해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라 1996년에 설립된 국제재판소이다. 1982년 12월 자메이카의 몬테고 만에서 서명되었고, 1994년 11월 발효된 후 이듬해 8월 유엔 전문기구로 발족되었다. 재판소장의 책임하에 운영되는 기구이기에 독립적인 성격이 강하며, 재판관은 외교특권과 면제를 누린다. 가장 큰 현안은 배타적경제수역(EEZ) 분규이며 해양 대륙붕 경계, 어업권, 해양환경보호, 선박 나포 문제 등을 주로 다룬다. 한국인 재판관은 1996년 박춘호 고려대 교수가 최초이며, 2009년도에 백진현 교수가 선출되었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 및 운영 등에 관련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1982년 국제연합 해양법협약(1982 UN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에 의해 국제해저기구 및 대륙붕한계위원회와 함께 설립된 조약상의 독립적인 사법기구로, 동 협약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분쟁을 판단하고 있다. 1982년 12월 10일 자메이카의 몬테고 만에서 서명되었고, 1994년 11월 16일 발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을 기초로 하여 1995년 8월 유엔 전문기구로 발족되었고 재판소는 독일의 함부르크에 있다.
재판소장의 책임하에 운영되는 기구이기 때문에 독립적인 성격이 강하며 재판관은 당사국 총회에서 21명을 선출하는데, 임기는 9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재판은 단심이기 때문에 분쟁 국가들로부터 재판결과에 따르겠다는 다짐을 받아야만 재판이 진행되는데 분쟁 당사국들이 서로 합의한 상태에서 제소를 하여 재판이 이루어는 경우도 있고,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제소했을 때 제소당한 국가가 응하여 이루어 지기도 한다.
재판관은 직무에 종사하는 동안 외교특권과 면제를 누리며, 자국의 분쟁 재판에도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재판소가 분쟁 심리 중에 어느 한 당사자의 국적 재판관을 포함시키는 경우, 다른 당사자도 재판관으로 참여할 1인을 선정할 수 있다. 분쟁 당사자의 국적 재판관을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 각 당사자는 재판관으로 참여할 1인을 선정할 수 있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해양 대륙붕 경계, 어업권, 해양환경보호, 선박 나포 문제 등을 주로 다루며 배타적경제수역(EEZ) 분규가 국제해양법재판소의 가장 큰 현안이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국제연합해양법협약의 해석과 적용 및 해양 관련 국제협정에 관한 분쟁해결을 위한 제3자적 분쟁해결기관을 마련, 기존의 분쟁 해결 방법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신속한 절차의 진행 및 재판부의 전문성을 제고하고자 하였다.
국제해양법재판소 설립 이전에도 해양 분쟁은 국제재판의 단골 메뉴로 1969년의 북해대륙붕사건 이후 40년 동안 국제사법재판소가 다룬 사건의 절반 이상이 해양 분쟁이었다. 유엔해양법협약이 정교한 분쟁해결절차와 함께 국제해양법재판소를 설립하기로 한 것도 바로 이렇게 빈발하는 해양 분쟁을 전담할 수 있는 재판소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국제재판의 증가 추세를 더한다면 앞으로 국제해양법재판소의 역할과 위치는 높아지는 추세이다. 현재로서는 해양법과 관련한 유일한 국제 상설기구이지만 1945년 설립된 국제사법재판소가 그동안 해양 분쟁과 관련한 문제들을 다루어 왔기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와는 사실상의 경쟁관계에 있는 셈이다.
특히 1996년 박춘호 고려대 교수가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재판관으로 선출되었고, 이후 박춘호 교수가 사망한 이후 2009년도에 백진현 교수가 보궐선거에서 선출되었다. 일본이 제기하는 독도영유권 문제와 관련하여 국제해양법재판소의 역할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2006년 우리 정부가 “강제관할권 배제선언”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유엔해양법 제287조에 따른 것으로 이 선언으로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해양법재판소로 가져갈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독도문제를 법적 분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게 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재판요건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