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의 친필로 된 「도산육곡」 2첩과 발문(嘉靖四十四年歲乙丑(1566)暮春(3月)旣望 山老書)을 판각하여 간행한 6장밖에 안 되는 서책으로, 현재 그 판목(版木)이 도산서원에 전한다.
서책으로는 세 형태가 있는데, 그 하나는 도산육곡 2첩과 발문만 있는 『도산육곡(陶山六曲)』, 또 하나는 농암 이현보의 「어부가(漁父歌) 구장(九章)」에 합본(合本)된 『어부가구장(漁父歌九章)』, 나머지 하나는 퇴계의 「매화시」에 합본된 『도산매화시첩(陶山梅花詩貼)』이다. 세 종류 모두 「도산육곡」은 6장본이다.
퇴계 이황이 지은 12수의 연시조(聯詩調)를 「도산십이곡」이라 하는데, 이황은 이별(李鼈)의 육가(六歌)를 모방하여, 「육곡」 하나에서는 ‘지(志)’를 말하고, 또 하나에서는 ‘학(學)’을 말하였다고 하였다. 이황은 발문에서 ‘한시는 음영할 수는 있으나 노래할 수 없어서, 노래로 부르기 위해서는 우리말로 지어야 한다.’라고 하여, 한시와 시조의 차이를 ‘영(詠)’과 ‘가(歌)’로 파악하고, 노래가 가져다주는 흥(興)에 시조의 존재이유를 설정하였는데, 이는 우리말 문학에 대한 하나의 자각이다. 이 작품은 사대부 온유돈후(溫柔敦厚)의 미학을 함의하고 있어, 이별로부터 시작되는 조선조 육가계(六歌系) 시가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되며, 후세 사림파(士林派) 시가의 중심적 지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