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31년(1894)에 간행된 『송강별집(松江別集)』 권7에 인용된 일서(逸書)로, 『송강별집』이 인용한 『동국악보』의 평어(評語)가 홍만종의 『순오지(旬五志)』에 있는 장가평어(長歌評語)와 일치하고, 『동국악보』와 『순오지』에 보이는 〈장진주사(將進酒辭)〉·〈맹상군가(孟嘗君歌)〉의 평어 및 ‘아동인소작가곡론(我東人所作歌曲論)’ 서문(序文)이 김천택의 무신본(戊申本) 『청구영언(靑丘永言)』(1728)에 전재(轉載)된 정황으로 미루어, 『동국악보』는 연민본 『잡가(雜歌)』의 체제와 유사한 홍만종 편찬 가사집으로 추정된다. 최근 그동안 최초의 가곡(시조) 가집으로 지칭되던 김천택 편 『청구영언』보다 앞서 홍만종이 『청구영언』과 『이원신보』라는 가곡(시조) 가집을 편찬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홍만종 친필 교정본 『부부고(覆瓿藁)』에 수록된 이 두 가집의 서문(序文)이 학계에 큰 파장을 주고 있는데, 홍만종이 우리 노래에 대한 관심이 컸을 뿐만 아니라, 직접 가집을 편찬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동국악보』에 대한 존재의 의미도 커지게 되었다. 『동국악보』에는 『순오지』에 평어(評語)가 달린 〈역대가〉·〈권선지로가〉·〈만분가〉·〈면앙정가〉·〈관서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속사미인곡〉·〈장진주(사)〉·〈강촌별곡〉·〈원부사〉·〈유민탄〉·〈목동가〉·〈맹상군가〉 등 작품이 수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