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정치는 북한에서 군을 우선하는 통치방식이다. 1995년 처음 논의되어 1998년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과 함께 북한의 핵심적 통치방식으로 정착하였다. 선군정치는 군사 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의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며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 위업 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방식이다. 2004년 1월부터 선군정치를 김정일 사상의 핵심 사상으로 키우기 위해 ‘선군사상 일색화’를 주창했다. 선군사상 일색화는 혁명적 군인정신을 전 사회에 보급함으로써 모든 사업을 군대식 사업방식으로 추진하여 경제 회생의 추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선군정치는 1995년 초에 처음 논의되기 시작하였으며, 1998년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과 함께 북한의 핵심적 통치방식으로 정착하였다. 선군정치는 군의 영향력을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북한사회 전 영역에 투영되고 있다.
선군정치는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며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위업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방식”으로, ‘군사선행, 군 중시’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선군정치는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김정일이 1995년 1월 1일 124 군부대의 ‘다박솔 초소’를 방문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선군정치 용어는 1997년 12월 12일자 『로동신문』 이후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유사한 개념으로 선군혁명영도, 선군후로, 군사중시 등을 병용하고 있다.
선군정치의 배경은 김일성 사망 이후 지속된 경제난과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초래된 외교적 고립과 대외적 안보위협을 들 수 있다. 선군정치는 대내적으로는 군이 가진 자원과 역량을 활용함으로써 인민경제를 회복시키고, 당의 저하된 사회통제 기능을 군 조직을 통해 보완함으로서 질서유지를 수행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핵과 미사일 문제에 관한 군사 협상 과정에서 군대의 역할과 사회적 위상을 강조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북한은 선군정치의 당위성과 관련하여 ① 역사적으로 군대를 먼저 창건한 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당 창건의 계기를 마련하는 등 어려운 시기마다 군대가 앞장서서 난국을 타개해 왔고, ②북한군은 노동계급의 전투성과 혁명성 등을 체현하고 있기 때문에 군을 앞세운 것은 노동계급을 앞세운 것과 차이가 없으며, ③ 동구권 등 사회주의 나라가 이른바 혁명의 영도계급으로서 노동계급만을 중시하여 몰락하였다고 하면서, ④ 제국주의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체제생존을 위해 선군정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해설하고 있다.
선군정치 하에서 군은 당을 제치고 지도자와 사회주의 체제의 옹호를 위한 중심 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선군정치 하에서 군부의 위상과 역할의 증대는 1998년 개정헌법에서 국방위원회가 최고 국가권력기관으로 부상하고, 군부의 정치 참여가 헌법을 통해 공식적으로 보장됨으로써 더욱 강화되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과 강행군의 기간을 거치면서 선군정치의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판단한 후, 선군정치를 하나의 사상체계로 발전시켜 김정일 사상의 핵심사상으로 키우기 위해 2004년 1월부터 ‘선군사상 일색화’를 주창하기 시작하였다. 선군사상 일색화는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정신을 사회 전체에 확산시킴으로써 전 인민들을 체제보위를 위한 전사로 만들고, 혁명적 군인정신을 전 사회에 보급함으로써 모든 사업을 군대식 사업방식으로 추진하여 경제회생의 추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선군정치는 대내외적 위기를 극복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김정일 정권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