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잡지는 1941년 1월 창간되어 1945년 2월 통권 54호로 종간되었다. 주로 시사와 문예물을 실었던 종합지로서, 기사의 내용은 친일색이 농후하였다.
이 잡지는 쉽고 재미있는 시국 선전용 대중잡지를 목표로 창간되었다. 발행인은 조선 굴지의 출판사 박문서관의 창업주였던 노익형(盧益亨)이었으며, 그가 사망한 1941년 이후에는 아들 노성석(盧聖錫)이 계속 발행하였다.
이 잡지의 호당 평균 쪽수는창간 당시인 1941년에는 253쪽이었으나, 일제 말 종이 값의 상승 등으로 인해 1943년에는 151쪽으로 줄었다. 가격은 1944년 6월호까지 줄곧 50전을 유지하였다. 표지와 화보는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을 선전하는 그림과 사진으로 장식되었다.
이 잡지에는 시사적 내용과 함께 문예물이 폭넓게 실렸다. 수필란, 시단, 연재소설란, 희곡란 등을 따로 갖추고 있었다. 소설의 경우는 중장편 연재소설을 매호마다 실었으며, 내용은 가정소설, 역사소설, 명랑소설, 과학소설 등으로 다양하였다. 주요 연재 소설가로는 이광수, 이태준, 김동인을 꼽을 수 있다. 한편 기성시인의 시와는 별도로 신인들의 시를 주로 싣는 신시대시단 코너를 따로 둔 점도 눈에 띈다. 신인들은 친일과는 거리를 둔 순수서정시를 많이 발표하였다.
일제 말 한국어의 공적 사용이 전면 금지된 상황 속에서 한글과 일본어를 혼용하여 발행한 월간잡지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