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성 ()

현대문학
인물
해방 이후 『비정통 사상』, 『의욕의 장원』 등을 저술한 학자. 불문학자.
이칭
이칭
노재비(盧再鼻)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4년 12월 6일
사망 연도
2006년 5월 19일
출생지
충청남도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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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비정통 사상』, 『의욕의 장원』 등을 저술한 학자. 불문학자.
생애

필명은 노재비(盧再鼻)이며, 호는 범초. 1904년 12월 6일 충북 청원에서 태어났다. 경성제일고보를 다녔다. 일본 호세이대학[法政大學] 불문과 재학 시절인 1926년 도쿄에서 이하윤, 김진섭, 이선근, 정인섭 등과 함께 외국문학연구회를 조직하여 해외문학파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1928년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에 있는 ‘아테네 프랑세’에서 5년 동안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1945년 전매국에서 일하다가 청주사범학교에서 근무했다. 1947년 성균관대 문리대 교수가 되었고, 이후 성균관대와 서울대 등에서 프랑스 문학을 강의했다. 문리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낸 후 1970년 정년 퇴임했다. 1981년 대한민국 학술원 원로회원이 되었다. 한불문화협회장과 불어불문학회장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2006년 5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 그의 나이 102세였다.

활동사항

1927년 1월에 발간된 『해외문학』 창간호에 아나톨 프랑스, 사맹 같은 외국 작가의 의 작품을 번역하여 실었고, 제2호에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을 번역하였다. 해방 후에는 주로 상징주의, 실존주의 등의 외국문학 사조를 비판적으로 소개하는 작업을 했다. 1960년 『사상계』에 발표한 평론 「하늘과 땅의 비중」은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에 대한 본격적 비평으로 유명했다. 그의 평론은 주로 자유정신과 사회참여에 대한 문제의식에 맞닿아 있다. 1965년 간행한 평론집 『비정통 사상』에는 「지성과 오만」, 「한국 식자군의 사상 생활」, 「뼈 있는 자유」 등 31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주로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전반에 걸쳐 한국사회와 사상의 문제를 매우 시니컬한 느낌으로 분석하는 글들이다. 그밖의 저서로 『의욕의 장원』(1963), 『손우성의 유럽여행기』(2000)가 있으며, 번역서로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1958), 몽테뉴의 『몽테뉴 수상록』(1963)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60년 3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수여받았고, 동년 12월 프랑스 정부의 초청으로 3개월간 프랑스 교육 체제를 시찰했다. 1979년 학술원상을 수상했다.

참고문헌

『손우성의 유럽여행기』(손우성, 수수꽃다리, 2000)
집필자
장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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