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북토피아와 인터넷 MBC의 공동프로젝트로 만들어진 하이퍼텍스트 서사물이다. 여기에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총 집필한 최혜실을 비롯하여 사이트 구성자 김선태, 세 명의 내용 집필자 오내영, 노희준, 이혜진 등이 포괄적 원작자로서 공동창작에 참여했다. 중심 인터페이스의 세로선에는 4시부터 26시까지의 시계열이, 가로선에는 세 명의 화자인 구보, 이상, 어머니가 배치되어 있다. 세로선과 가로선이 만나는 지점을 클릭하면 서사텍스트가 하나씩 열리도록 짜여졌다. 때문에 총 69개의 단위텍스트 배치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56개만 배치되어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설정된 총 430여 개의 링크는 내부텍스트와 외부텍스트, 서사텍스트와 서사밖텍스트를 오고갈 수 있도록 연결되었다.
세 명의 화자인 이상, 구보, 그리고 구보 어머니의 어떤 하루에 대한 서술이 중심 내용이다. 벤처기업의 사장인 이상은 출근하여 구보에게 전화를 걸고 죽은 어머니를 생각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밤늦게 귀가하여 인터넷에 접속하는 등 지극히 개인적이며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구보의 하루도 이상을 마음에 두고 애태우며 어머니와 갈등하고 코엑스몰을 방황하고 친구와 롯데월드에 가는 것이 전부이다. 구보의 어머니 역시 이혼한 딸 구보가 안타까워졌다가 소설 쓰는 그녀가 자랑스러워졌다가 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구보는 아버지에 의해 냉장고에 갇혔던 어릴 적 기억과 대학 때 이상에게 꽃구경 가자는 제안을 무시당했던 기억으로 끊임없이 인터넷 접속을 시도한다. 그 과거의 기억은 구보의 삶에서 아직까지도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삶의 계기들이다. 이에 비해, 그녀의 현재적 일상에서는 별반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는다. 서로 연관 없이 따분하고 사소한 일상만 반복된다. 그녀에게 쇼핑몰을 산책하는 것과 롯데월드에 가는 것은 아무런 연관도 없는 단절된 개별 사건일 따름이다. 그것들은 각 시간대별로 정확하게 구획된 격자 속에 갇혀서 비연속적으로 반복될 뿐이며, 어디에서 시작되거나 끝나도 무방한 무시간적 특성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디지털구보2001〉은 ‘결말이 없는 텍스트’로 이해된다. 최종적인 국면으로서 결말 대신에, 텍스트를 산출한 오늘의 문화적 기대들을 그럴 듯하게 보여주는 행위와 사건들이 플롯을 무시한 채 무질서하게 뒤섞여 곳곳에 잠복하고 있을 뿐이다.
「디지털구보2001」은 국내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하이퍼텍스트 서사물이라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하지만 하이퍼텍스트 구조와 이론에 대한 세심한 고려 없이, 완전개방형 링크구조의 성급한 채택, 쌍방향성에 대한 고려 부족, 멀티미디어의 부적절한 도입 등 본격적인 디지털문학으로서 한계를 노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