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일본인 납북사건은 북한이 남파간첩의 일본어 교육 및 신분 도용을 위하여 일본인을 납치한 사건이다. 1987년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가 일본어 여교사에게 일본어를 배웠다고 폭로하면서 문제가 제기됐다. 이 사건에 대해 북한은 일본이 조작한 정치적 모략극이라고 주장했다. 2002년 열린 북·일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고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이 사건은 냉전시대 치열한 남북 대결 상태에서 빚어진 북한의 심각하고 중대한 국가범죄의 하나로 북·일 관계 개선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의
북한이 남파간첩의 일본어 교육 및 신분 도용을 위하여 일본인을 납치한 사건.
개설
역사적 배경
경과
7년 반 만인 2000년 4월에는 9차 본회담이 평양에서 재개되었고, 같은 해 8월에는 일본에서 10차 본회담이, 11월에는 북경에서 11차 본회담이 각각 개최되었으나, 일본인 납치문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 2002년 9월 17일 제1차 평양 북 · 일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일본 측이 주장해 온 11명의 납치 피해자 가운데 4명이 생존해 있고, 6명은 사망했으며, 1명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한다.
결과
이에 대해 일본 측 역시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 납치 생존자 5명의 북한 내 가족들이 일본으로 송환하지 않는다면,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은 있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자 북한은 일본인 납치자 13명 가운데 일본으로 귀환한 5명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은 이미 사망했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는 당연히 일본 내 여론을 크게 악화시키게 마련이었다. 북한당국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 일본당국은 납북자 수를 17명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아직도 상당한 시간을 요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2018년 9월 26일 유엔총회에 참석한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북한의 일본인 납북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일본(日本) 외교정책(外交政策)의 이해(理解)』(강태훈, 오름, 2006)
- 『글로벌화(化)와 인권교과서(人權敎科書)』(역사비평사, 2003)
- 「북한(北韓)의 국교정상화(國交正常化) 제안(提案)과 일본(日本)의 대북한정책(對北韓政策):정부·자민당 및 사회당의 대응을 중심으로」(신정화, 『한국과 국제정치』, 제18권 2호, 2002)
- 『연합뉴스』(2002.9.17)
- 『월간 아태지역동향』(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2002.1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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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직접적으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경제ㆍ외교ㆍ정보 따위를 수단으로 하는 국제적 대립. 특히 제이 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뜻하며, 1990년 소련의 해체와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양 진영 사이의 냉전 상태는 사실상 종결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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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국제 연합의 최고 기관. 모든 가맹국으로 구성하며, 중요 사항은 3분의 2 이상, 그 밖의 사항은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한다. 토의와 권고의 기관으로 집행할 권한은 없으며, 심의, 감시, 재정, 선출 등 헌장의 범위에 드는 일련의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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