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파 ()

정치
개념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삼은 남한의 반체제 운동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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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삼은 남한의 반체제 운동 세력.
개설

정식명칭은 주체사상파(主體思想派)이며, 주사NL(민족해방)파, 자주파 등으로도 호칭된다.

연원 및 변천

주사파는 1986년 초부터 학생운동권 및 노동운동권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학생운동권의 주사파는 대학별로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자민투)를 조직하여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NLPDR)론을 선전하면서, 대중적 반미투쟁을 선동했다. 주사파는 자민투를 앞세워 1987년 봄부터 주요 대학들에서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했으며, 대학생들의 합법조직인 학생회를 장악하여 일반학생들을 자기들의 혁명투쟁에 동원하는데 성공했다. 주사파의 주도 하에 대학생들은 1987년 6월 민중항쟁기간 중 개헌을 요구하는 대중투쟁의 선봉에 섰으며, 6·10항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주사파에 의해 주도되는 대학들의 학생회는 그해 8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을 결성했다. 전대협은 당시 한국사회 최대의 군중동원력을 가진 조직이었다. 대학생들의 전국적 조직으로서 전대협을 계승하여 결성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도 주사파가 주도하는 조직이다. 학생운동권에서 주사파의 세력이 급속하게 성장하자 청년운동권 및 기타 성인운동권에서도 주사파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었으며,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이르러 한국사회의 전체 운동권에서 주사파의 주도권이 확립되었다. 노동운동분야에서는 민족해방투쟁 우선론이 노동자들에게 호소력을 갖지 못하여 주사파의 세력확산이 느리게 진행되었다. 노동운동분야에서의 주사파 주도권은 1990년대 후반부터 확립되었다. 주사파는 1987년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지지한 이래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와 그가 이끄는 정당을 지지했다. 주사파는 1994년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하고, 1995년부터 북한이 심각한 식량난에 처해있다는 사실이 외부세계에 노출되면서 한 때 사기저하 및 세력위축의 곤란을 겪었다.

내용

주사파는 남한 혁명운동권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다수파이다. 주사파는 민족해방(NL: National Liberation)파의 한 분파이다. 민족해방파라는 명칭은 그들이 한국을 사회주의화하기 위한 혁명 투쟁을 전개함에 있어서 민족해방투쟁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서 비롯되었다. 민족해방파는 북한정권이 제시한 남한 혁명의 성격 및 그 혁명의 실천을 위한 전략·전술론을 수용하여 민족해방투쟁 우선론의 입장을 취해왔다. 북한정권은 남한사회의 성격을 식민지 반봉건(반자본주의)사회로 규정한다. 한국사회는 미국에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완전히 예속된 식민지로서 자본주의 경제가 불완전하게 발전한 사회이며, 민중이 미국으로부터 직접 탄압을 받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북한정권에 따르면, 이러한 한국사회의 기본 모순은 한국민중 대 미국 간의 민족모순과 한국의 민중 대 한국 자본계급 간의 계급모순이며, 그 두 모순 가운데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주요 모순은 민족모순이므로 한국의 사회주의화를 위한 혁명 투쟁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려면 미국의 지배로부터 한국민족을 해방하는 투쟁, 즉 민족해방 투쟁부터 우선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북한 정권은 남한에서 일으켜야 할 혁명은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 이며, 그러한 혁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여러 계급 계층으로 구성된 대중을 민족자주(반미)통일전선으로 끌어 모아 대중 중심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민족해방파는 북한정권이 제시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이혁명이론의 모든 것을 수정 없이 수용했다. 다만 남한의 대중들을 기만하기 위해 ‘인민’라는 용어를 ‘민중’으로 바꾸어 사용했다. 그들은 북한정권이 제시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이론과 함께 김일성 주체사상을 수용한 파와, 혁명론만 수용하고 주체사상은 수용하지 않는 파로 분류된다. 전자를 주사NL파, 또는 주사파라 부르고, 후자를 비주사NL파라 부른다. 주사파는 다시 주체사상을 전면적으로 수용하여 북한정권 및 그 지도자에 맹종적 태도를 취하는 주사파와 주체사상에서 수령에 맹종할 것을 요구하는 수령론을 제외한 나머지를 수용하여 북한에 대해 다소 독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주사파로 분류된다. 시간이 가면서 민족해방파 내에서 비주사NL파가 크게 축소되었고, 뒤이어 주사파 내에서 북한에 다소 독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파벌도 크게 축소되었다. 북한정권에 맹종하는 주사파의 비밀조직 구성원들은 그 조직에 가입하면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와 북한 노동당의 당기를 앞에 두고 충성을 맹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정권은 북한에 맹종적 태도를 취하는 주사파 조직들과 연락·지원망을 확보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주사파 소속인사들은 북한정권과 자기가 직·간접적으로 연결이 되는 것을 당연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황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주사파의 활동공간이 확대되고,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과 6·15성명 발표이후 남북교류가 확대되면서 주사파의 규모와 활력도 크게 회복되었다. 규모와 활력이 회복되면서 운동권에서의 주사파의 주도권은 더욱 강화되었다. 운동권 내에서의 주사파의 주도권 강화는 운동권의 다른 파벌로부터 반발을 초래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초에 발생한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이다. 운동권을 대변하는 합법정당인 민노당은 당초 노동계급 정당 조직을 주장해온 평등파(민중민주파)의 선도에 의해 창당되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운동권의 다수파인 자주파(민족해방파)가 민노당에서도 다수파를 차지하게 되었다. 다수파로서 민노당의 당권을 차지하게 된 자주파는 민노당의 노선을 종북성향(從北性向)으로 기울어지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평등파로부터 받았다. 민노당의 소수파로 전락한 평등파는 당권파인 자주파에 대해 종북노선(從北路線: 북한추종노선)의 청산을 요구했으며, 그러한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민노당으로부터 집단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결성했다.

의의와 평가

2009년 현재 주사파는 남한 운동권 주요 단체들의 지도부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사회 여러 분야에 침투하여 친북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한국의 변혁운동과 사상논쟁』(방인혁, 소나무, 2009)
『지성과 반지성』(류근일·홍진표, 기파랑, 2005)
『한국 좌익운동의 역사와 현실』(유동열, 다나, 1997)
『민족자주화운동론』Ⅰ,Ⅱ(조진경, 백산서당, 1988)
『학생운동논쟁사』(편집부, 일송정,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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