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은 혁명적인 언어사상, 당의 모국어 교육정책의 성과, 문맹퇴치사업의 완성, 교육문화의 대중화, 그리고 우수한 민족글자의 존재 등으로 한자폐지사업을 1948년에 본격화시켰으며, 1949년 한자사용의 폐지 제도를 실시하여 전반적인 글자생활에서 한자를 쓰지 않게 하였다.
북한은 한자 사용을 폐지하면서 대중적인 출판물에 대하여 처음부터 철저히 우리 글자만을 쓰게 하였으며, 과학기술분야의 전문용어를 다루는 출판물, 민족고전이나 역사를 반영하는 특수한 출판물에 대하여 묶음표 안에 어려운 한자를 일정기간 넣어서 보완적으로 이용하는 과도적 단계를 거치게 하였다.
한자 사용을 폐지한 것은 한자가 가지고 있는 일련의 제한성들, 우리 말과 글을 주체성있게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요구, 나라의 주인이 된 근로인민들을 더욱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존재로 육성하기 위한 요구로부터 제기되었다.
먼저 학교 교과서에서부터 한자를 쓰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북한은 1945년부터 1946년 사이에 편집 발행한 국문교과서와 그 보급은 한자 폐지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시켰다. 1946년 말, 1947년 초부터 『노동신문』 등 출판물들에서 전체가 국문으로 된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국가 공문서들에서도 한자가 줄어들게 되었다.
1949년 3월 북한의 전반적인 글자생활에서 한자를 쓰지 않게 되었다. 그 뒤로 언어 정화 운동인 말다듬기 운동, 문법의 규범화, 문화어운동, 철자법수정, 띄어쓰기, 한자어 및 외래어 정리 등의 운동이 일어났다. 이 때를 전후하여 북한에서는 한자 폐지사업이 완성되었다.
한자사용의 폐지는 우리 말과 글의 주체적인 발전, 출판인쇄사업과 인민들의 전반적인 사상문화 생활발전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한자폐지 사업은 인민들의 글자생활을 단일화하였고, 인민들이 우리 말을 통하여 김일성 정책을 보다 빨리 연구·체득하고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할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