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중앙통신 보도국장, 주필 등을 역임한 언론인.
개설
해방 직후부터 김일성(金日成)을 뒤따라 다니며 그에 관한 보도를 거의 도맡았으며, 김일성의 직속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33년 시인 임화(林和)와 함께 『집단(集团)』을 발행했다가 폐간당하고, 『조선중앙일보』에 입사하여 1936년 『조선중앙일보』가 폐간당하기 까지 일본 동경 특파원으로 근무하였다. 이후 1942년에는 『평양매일신문사』에 입사하여 이 신문사가 폐간할 때까지 일했고, 1945년에는 평양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장을 지냈고, 평양인민정치 위원회 위원을 지내면서 같은 해 평양민보사 편집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 뒤 1946년에는 평양시문학예술동맹위원장과 북조선문학예술동맹 서기장, 그리고 북한기관지 민주조선사 주필을 지냈다. 1948년에는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부장을 지냈으며, 1951년에는 주필을 지냈으나, 1952년 주필에서 물러나 군소(群小) 잡지 기자로 전락했다.
1953년 대일본 친선공작 사명을 띠고 일본에 밀파되어 한동안 일본에 머물면서 대일본 친선공작 활동을 전개하다가 지금껏 자기가 해온 것이 모두 부질없음을 깨닫고, 1959년 대한민국으로 귀순하였으며, 귀순 후 육군본부 특전감실 집필위원이 되었다.
1960년에는 동방통신사 『동방순보』 사장을 지냈고, 1961년에는 내외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연구소장을 지냈다. 1963년에는 『내외신문』 사장을 지내면서부터는 북한을 비판하는 많은 저서를 내놓았는데 특히 『북한편람』은 북한을 연구하는 데 크게 기여한 책이다.
1962년 5월 3일부터 『동아일보』에 “김일성(金日成)을 고발(告發)한다”라는 글을 쓴 일이 있다.
북한해방통일촉진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고, 「공산권문제연구소」를 설립하여 초대 이사장 되었다.
참고문헌
- 『한설야(韓雪野)』(강진호, 한길사, 2008)
- 『하늘은 그리도 높고 푸르렀는데』(윤형복, 한국문학도서관, 2007)
- 『김일성(金日成)과 북괴(北傀)의 실상(實像)』(한재덕, 공산권문제연구소,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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