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 1책 35장. 책크기는 세로 24.7㎝, 가로 20.6㎝이다.
이 가집은 필체가 조야(粗野)하고 체제가 군색하다는 평가도 있었으나, 수록된 모든 가곡이 우·계면조로 분류되었으며, 「태평가」(一編後解歌) 이후에 여창가곡(女唱歌曲)의 형식을 갖춘 19세기 초·중반 가곡 가집으로서의 면모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 가집은 19세기 후반 『가곡원류』계 가집에서 완성되는 이삭대엽의 파생곡, 즉 두거(頭擧)·평거(平擧)·중거(中擧) 가운데 여창에서 두거(頭擧)만 나타나며, 악곡 배치가 어려운 작품을 별도의 ‘각조음(各調音)’이란 항목에 배치한 점이 매우 이색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흔히 가집 권두에 실리는 음악관련 사항 중 삼조(三調)와 풍도형용(風度形容)의 일부만 기록된 소략한 면이 있으나, 가곡 반주악기와 매화점 장단, 가야금과 해적(嵇笛)의 여음 육보(肉譜)를 기록한 것 등은 이 가집만의 독특한 면모이다.
『흥비부』에 수록된 가곡은 여타 가집의 표준적 노랫말로부터 변용된 사례가 많은데, 수용환경이나 연행조건이 여타 가집과 다르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이러한『흥비부』의 가집으로서의 독자성은 『흥비부』의 이본(異本), 곧 나손본『악부』(건·곤) 중 건편(乾篇)의 성격이 재조명되면서, 이 가집의 전사자가 통영(統營)을 배경으로 한 풍류문화권에 놓여있다는 점을 통해 가집 성격이 구체화되고 있다.
조선후기 가집사의 구도가 지방 관변풍류문화권으로 확장될 수 있는 전망을 보여주었다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