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구 ()

사상구청
사상구청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부산광역시 중서부에 위치한 구.
정의
부산광역시 중서부에 위치한 구.
개관

동쪽으로는 서구, 서쪽으로는 낙동강, 남쪽으로는 사하구, 북쪽으로는 북구에 접해 있다. 동경 128°54'∼129°00', 북위 35°6'∼35°12'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36.09㎢, 인구는 23만 7711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2개 행정동(8개 법정동)이 있고, 구청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에 있다.

자연환경

서쪽은 낙동강과 경계를 이루고, 동쪽은 백양산, 남쪽은 구덕산·승학산이 둘러싸고 있다. 이곳에서 발원한 삼락천, 학장천 등은 낙동강으로 유입되면서 개석작용으로 분지를 이루고 하류에는 퇴적지형이 형성되어 전체적으로 서쪽으로 열린 분지지형을 이룬다.

학장동에 소재한 구덕산(九德山)은 서구와 사상구 그리고 사하구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서 금정산맥의 주능선에 솟은 높은 산지이다. 북동쪽으로는 엄광산·백양산·상계봉으로 연결되면서 금정산의 고당봉에 이어지고, 남서쪽으로는 시약산과 승학산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다대포의 몰운대까지 산세를 뻗치고 있다. 전형적인 노년산지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깊은 계곡이 발달되어 있다.

학장동에 소재한 엄광산(嚴光山)은 서구와 부산진구 그리고 동구와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금정산맥의 주능선에 솟은 전형적인 노년산지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 산은 북쪽으로 백양산과 마주하며, 남쪽으로는 구덕산과 이어지고 한때 고원견산(高遠見山)으로 불리어 왔다.

주례동에 소재한 산인 백양산(白楊山)은 부산진구와 사상구의 경계를 가르며 북쪽으로는 금정산과 이어져 있다. 백양산 남쪽 기슭에는 삼국시대 동평현(현 당감동)의 치소가 있었던 동평현성터가 있다. 동쪽 산록 아래 선암사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하여 선암산이라고도 한다.

괘법동에는 벼락산이 있었다. 경부선 사상역 부근에 자리 잡고 있었던 백양산 기슭의 작은 동산이었다. 지명과 관련해서는 이 산에 벼락이 자주 떨어졌다는 설과 산세가 험한데다 가파른 절벽이 많아 벼랑산이라 불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이들 산지에는 많은 계곡들이 발달되어 있다. 그 중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었던 고개는 학장동의 구덕고개이다. 엄광산과 구덕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 ‘구덕령’ 또는 ‘구덕기재’, ‘구덕재’라고 했다. 해발 220m로 북동쪽에 엄광산, 남서쪽에는 구덕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 고개는 예부터 대신동과 구포를 연결하는 교통로로 구덕터널이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구포·양산·밀양·김해방면으로 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남동과 북사면이 비교적 가파르지만 고개일대는 완만한데다 울창한 산림으로 뒤덮여 지금은 많은 등산객이 즐겨 찾는 등산 코스이기도 하다. 이 고개의 동남 산록에서는 보수천이 발원하고, 북서 산록은 학장천의 발원지이다.

모라동에는 절곡이 있다. 운수천의 상류계곡에 자리한 운수사로 올라가는 계곡이라 하여 절골 혹은 운수사 계곡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편, 이 계곡은 운수산에서 발원하는 계류골짜기로는 가장 크고 길다 하여 큰골(大谷) 또는 장골(長谷), 장안골(長安谷)이라고 한다.

모라동을 관류하는 운수천은 운수산(雲水山)에서 발원하여 경사가 급한 계곡을 흐르면서 여러 지류들이 만나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하류는 저지대를 형성하여 옛부터 자주 범람하였으나 현재는 호안시설과 하구정비가 잘 되어 수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하구 가까이에서 운수천에 합류하는 큰 지류인 소곡(小谷)은 수량이 많았는데, 이 소곡이라는 속칭에 따라 본류를 대곡(大谷)이라고 불렸다. 이 운수천은 구포가 동래군에 속하기 이전까지 동래군과 양산군의 경계를 갈랐다.

삼락동을 흐르는 삼락천은 구포의 범방산(泛舫山)에서 발원하여 삼락동을 관류하다가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일명 유두강으로도 불린다. 이 하천은 모라동 및 덕포동과 삼락동의 경계를 가로질렀다. 이 유두강은 사상공업지구의 조성으로 없어졌으며 배수로가 신설되었다.

학장동을 흐르는 학장천은 엄광산에서 발원하여 개금·주례·학장·엄궁동 등 4개동을 관류하여 낙동강 본류로 흘러드는 도시하천이다. 길이 5.4㎞에 이르는 학장천은 과거에는 청정하천이었으나 이 지역에 사상공단이 조성되면서 오염되었다. 한편 괘법동에는 포구로서 청남포가 있었다. 괘법동의 옛 지명인 괘내마을은 하안촌을 일컬었으며, 지명은 포구 가에 수초가 무성하다고 하여 유래되었다.

사상구 지역은 바다와 가깝고, 낙동강 하류에 위치하여 온대해양성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기온의 연교차가 적으나 산맥이 구의 동남쪽에 연해 있어 서구 지역보다는 겨울의 온도가 비교적 낮다. 동남해안에 위치하여 태풍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연평균기온 14.9℃, 1월 평균기온 2.8℃, 8월 평균기온 25.2℃이다. 연평균강수량 1386.5㎜, 평균 풍속 3.1㎧이다.

역사

사상구 일대는 낙동강 하류 연안으로써 삼각주를 끼고 있어 인간 거주에 유리하여 여러 곳에서 선사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학장동과 모라동에서 패총이 발견되고 동일한 생활권인 인근의 금곡동과 구포동, 화명동에서 청동기와 철기유물이 발굴되어 이 지역에서도 일찍부터 인간이 거주하여 왔음을 보여준다. 삼한시대에는 거칠산국에 속했으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에 병합되어 505년(지증왕 16)에 거칠산군 대증현, 757년(경덕왕 16)에 동래군 동평현이 되었다.

고려 전기 동래현에 속한 사상구 지역은 울주수령의 감독을 받으면서 이 지역에 존재하는 향리가 실질적인 통치를 하였다. 한편, 고려 중기 이후에는 동래현에 현령을 둔 것으로 보아 사상구 지역은 동래현령의 통치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1021년(현종 13)에 양산군 동평현에 속하였다.

동래부에 속하였던 조선시대의 사상구 지역은 낙동강 하류 연안에 위치하여 어로 생활에 종사하고 하천의 산록 계류천 유역에서 자연마을을 형성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사료에 지명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동래부사례』(1868)이다. 『동래부지』(1740)에는 동래부를 구성하고 있는 면으로 사천면만 기재되었다. 『동래부사례』(1868)에는 사천면을 제외한 읍내면·동면·북면·서면·남촌·동평면의 이름은 그대로 있는 반면에 부산면·사상면·사하면이 신설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사천면이 분리되어 사상면과 사하면으로 되었음을 보여준다. 사상면과 사하면은 『영남읍지』(1895) 이후의 자료에서 계속 수록되어 있다.

오늘날의 사상구 지역은 18세기 전반에 사천면의 상단과 하단 중에 상단, 그리고 19세기 후반 이후에는 사상면의 영역이었다. 18세기 사천면 상단에는 주례리·모라리·괘내리·덕포리·장문리·엄광리 등의 리가 있는데, 이들 리가 오늘날의 사상구 지역이 되었고, 사천면의 상단은 사상면으로 독립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1910년 부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래군 사상면이 되었다. 광복 이후인 1963년에는 부산시로 편입되어 각기 부산진구 사상출장소로 승격되었다.

1960년대 이후 이곳은 공업단지가 조성되고 택지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급속하게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공업단지가 입지하면서 모라1동·덕포1동은 공업단지와 주택가 주변에 영세상가가 밀집하였다. 모라동은 신흥주거지역으로 아파트단지가 되었고, 학장동·덕포동·주례동 등도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역이 되었다.

1975년 부산진구의 구포 및 사상출장소가 폐지되고 시 직할 출장소가 설치될 때 부산시의 북쪽에 위치한다 하여 북부출장소로 불렸고 그후 1978년 구 승격 때 북구라 하였다. 구 승격 때 경남 김해군이었던 대저읍(현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일원, 가락면 일원, 그리고 명지면 일원도 북구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1987년 시직할 강서출장소가 설치된 후 강서의 관할이 되었다. 사상구는 사상출장소의 관할이었던 지역으로 19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북구에서 분구되었다. 밥정동으로 삼락(三樂)·모라(毛羅)·덕포(德浦)·괘법(掛法)·감전(甘田)·주례(周禮)·학장(鶴章)·엄궁(嚴弓) 등 8개 동이 있다.

유물·유적

모라동에는 운수사(雲水寺)가 소재한다. 모라동의 뒷산에 있는 운수산(雲水山)의 명칭도 이 절에서 유래하였다.『동래부지』의 불우(佛宇)조에서는 운수사를 신수암(新水庵)이라 적고있고, 『동래부읍지』에서는 운수사는 동래부의 남쪽 30리 선암산에 위치해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창건은 가락국시대라고 구전되어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운수사에는 폐사지가 남아 있는데 그 사지에는 법당지의 석축과 초석, 그리고 부도 2기가 남아 있다. 남쪽 큰 부도는 높이 2m로 (기단의 높이 75㎝) 상대석, 중대석, 하대석, 지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쪽의 작은 부도 기단은 지대석 위에 하대석이 놓이고 중대석 없이 상대석이 놓여 있는데 높이가 1.4m(기단 50㎝)이다. 경내에는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팽나무가 있다.

학장동과 모라동에는 패총이 있다. 1967년 부산대학교 박물관 유적 답사 때 학장동의 도로변의 기원 전후 패총으로 추정되는 유적지에서 김해문화기의 토기편이 발견된 바 있다. 이와 같은 패총은 인근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모라동 패총은 운수산에서 낙동강 쪽으로 뻗어 나온 줄기 중에서 강 쪽으로 가장 멀리 뻗은 산줄기 끝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다. 이 패총에서도 김해식토기(金海式土器) 파편이 발굴되었다.

모라동에는 1993년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불교의식이자 예술인 부산영산재가 부산영산재보존회에서 전승되고 있다. 영산이란, 영산회상(靈山會相)의 준말로 석가가 영취산(靈鷲山)에서 한 설법회를 뜻하는 것이다. 이 법회의 양상을 재현하는 의식이 영산재이다. 영혼천도를 위한 의식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의식으로 순수한 불교 의식인 안차비로 양분되며 불교문화의 진면목을 반영하는 전통예능으로서 가치가 크다. 불교의식 무용인 작법 무와 춤의 구성이 특이하며 범패는 통·범 소리로서 가락이 다양할 뿐 아니라 면밀하면서도 독창적이며 장중한 멋이 있다. 영산재를 구성하는 범패와 작범무는 영산재의 절차에 따라 두루 추는데, 부산영산재의 경우 겹바라춤이다.

학장동에는 학성성지가 있다. 낙동강 연안에 위치한 이 지역이 옛날 대증현 또는 동평현으로 형성되어 있었을 때는 왜적의 침입에 대한 방어 중심지역이었다. 동평현 당시만 해도 현의 치소는 오늘날의 당감동에 있었다. 낙동강 강가에서 학장동·주례동 지역을 거치면 바로 당감동에 닿게 된다.일제강점기 때까지는 오늘날 주례동과 학장동으로 통하는 언덕 사이에는 성지 같은 것이 남아 있었지만, 현재 그 성터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어서 축성연대를 알 수 없다. 다만 강변에 위치한 엄광산 기슭에서 시작하여 산기슭을 따라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을 학성(鶴城)이라 하고 학장동의 마을 이름도 이 학성에서 유래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동래부지』의 성곽조에 의하면, 목장성이 3곳 있었다고 하는데, 그 하나가 “엄광산 기슭 강변에서 부산의 범천산으로 이어졌는데, 그 길이가 15리였지만 지금은 없어졌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이 목장성을 왜구를 막기 위해 고려와 조선초에 이용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가 있다. 이곳에는 낙동강의 퇴적작용이 활발하고 조석 간만의 차이기 커, 크고 작은 사구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해수에서 담수가 교차하면서 부유생물(플랑크톤)이 많아 어류, 패류, 갑각류, 수서 곤충 등이 풍부하다. 이러한 이유로 이 곳은 철새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교육·문화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21개교, 중학교 11개교, 고등학교 6개교와 경남정보대학과 신라대학교·동서대학교가 있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세워진 근대학교인 사립명진학교가 있다. 지금의 덕포동에 소재한 사상초등학교의 전신이다. 원래 명진학교 교사는 지금의 경부선 철도 사상역 부근인 괘법동에 세워졌으며 설립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당시 사상지방의 유지들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신문명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뜻을 모아 세운 학교이다. 수업연한은 4년이었고, 사용교과서는 맹자·산학통편(算學通編), 초등대수학(初等代數學), 고등소학이과(高等小學理科) 등이었다. 일제강점 이후 새학교령에 의해 공립학교를 세우면서 1920년 사상공립보통학교로 바뀌었다.

괘법동에 소재한 신라대학교는 부산여자대학교의 후신이다. 1964년 부산여자초급대학으로 개교하였으며 1969년 4년제 정규대학인 부산여자대학이 되었다. 1992년 연산동캠퍼스에서 백양캠퍼스로 이전하였으며 1997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고 신라대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학장동에는 부산여성문화회관이 있다. 1992년 개관하였으며 대강당, 소극장, 전통관, 강의실 등을 갖추고 있다. 부산 여성의 생활문화진흥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운영, 교양·사회교육, 생활정보 교환과 각종 상담사업을 통한 복지증진, 문화·자원봉사를 통한 인간존중의식 제고 등을 위한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프로그램으로는 문화봉사 숙련반, 특별강좌, 문화교실, 강연회, 여성문화봉사 예술단, 생활문화회, 민속자료실 운영, 상담활동 자원봉사, 생활정보센터 운영, 알뜰 고향장날·벼룩시장 운영 등이 있다.

감전동에는 사상문화원이 있다. 지방축제 등을 주관하며, 문화탐방, 웅변대회, 문학의 밤 등을 개최하고 있으며, 덕포동에는 사상도서관이 위치하여 지역문화 활동의 중심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민속

사상구에는 음력 정월대보름날에 행해지는 달집태우기 행사가 꾸준히 전승되어 행해지고 있다. 대나무와 소나무를 높이 세우고 볏짚을 묶어 태우는 이 행사는 한해의 송액 영복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로써 그 동안 각 동별로 실시되어 오고 있었다. 하지만 1999년 사상문화원이 개원되면서 고증을 거쳐 2000년도부터 사상구민의 축제행사로 낙동강변 삼락체육공원에서 개최하고 있다. 길놀이를 시작으로 높이 20m의 대형달집을 만들어 월령기원제를 지내고 달이 뜸과 동시에 달집에 불을 태우는 이 행사는 영남권에서 가장 큰 달집태우기 행사로써 각종 민속놀이(동별대항 윷놀이대회, 그네타기, 콩 볶아 먹기, 고구마 구워먹기, 떡치기, 그네타기 등)를 병행하고 있다.

사상구의 여러 마을에서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당산을 모시고 있다. 모라2동 체육공원 안에 소재한 모라당산은 마을 형성과 동시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본래 하당(下堂: 음식을 준비하는 곳)과 상당(上堂: 제사지내는 곳) 두개가 있었으나, 1986년 모라택지개발로 하당은 철거되었다. 당산을 처음 만들었을 때에는 단군(檀君)을 모시는 제당이었으나, 지금은 주산신령(主山神靈)을 모시는 제당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음력 1월과 9월 보름에 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3월과 9월에 모라복지회 회원들이 음식을 준비하여 제를 올리고 있다. 모라 당산의 특이한 점은 현존하는 사상구 소재 당산 중에 유일하게 단군을 모셨다는 내력이 전해진다는 점이다.

덕포동 강선대에도 사당이 2곳 있다. 사상초등학교 뒤에 있는 것을 하강선대(下降仙臺: 일명 할매당산), 서쪽의 지하철 덕포역 도로변에 있는 것을 상강선대(上降仙臺: 일명 할배당산)라고 한다. 상강선대와 하강선대는 주민의 신앙의 상징으로서 이곳의 고목을 당산나무로 하여 언덕 위에 당집을 1700년경에 세워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빌어 왔으며 그 유습이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지명은 매년 음력 12월 1일이면 신선이 하강하여 목욕을 하고 쉬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설화·민요

사상구 내에는 여러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모라동에 소재한 고동바위골에는 옛날 바위 밑에서 솟아 나오는 맑은 물에 큰 고동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또한 운수사의 입지와 관련하여 경내의 약수터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구름이 되는 것을 보고 이곳을 절터로 잡아 운수사라 하였다는 전설, 강선대에 신선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쉬고 갔다는 전설 등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산업·교통

과거 농업이 활발하였으나 공업단지와 택지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낙동강 연안 하천부지에서만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재첩잡이를 중심으로 하던 어업도 낙동강 하구언 건설로 거의 소멸된 상태이다. 공업은 1960년대 부산에서도 공업단지 조성의 필요성이 대두면서 1974년 삼락동·모라동·덕포동·괘법동·감전동·학장동 일원에 중소업체들이 밀집한 사상공업단지가 완공되어 부산 공업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 업종은 철강·기계를 비롯해 고무·화학·섬유 등이다.

한편 모라동의 축산물도매시장, 엄궁동의 농산물도매시장, 감전동의 청과시장과 자동차매매시장 등의 대형 물류시설이 위치하고 있으며, 괘법동의 서부시외버스터미널·사상역 주변에 상업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농산물도매시장은 서울의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졌으며. 부산 일원의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 신선한 농산물의 공급, 신속한 유통정보의 전파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국민생활 향상에 기여한다는 개설목적에 따라 1993년 개장된 부산지역 최대의 농산물도매시장이다.

감전동에는 청과물도매시장인 부산새벽시장이 있다. 부산시에서는 1982년부터 농산물도매시장의 근대화 계획을 수립하여 13개 시장으로 통폐합하였다. 이때 북구 감전동에 청과물도매시장을 개설하였는데 이때 만들어진 것이 부산새벽시장이다. 아침 새벽에 매매가 이루어진다고 하여 새벽시장이라 불리게 되었다. 녹산·강서 지역이나 경남은 물론 전라남도·강원도 등 전국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과일, 야채, 부식류 등이 주로 거래되고 있는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청과시장이다.

사상구 지역의 교통은 중앙부를 동서 방향으로 통과하는 가야로와 제2도시고속도로(동서고가로)로 도심과 연결되는 한편, 낙동대교(감전1동∼대저2동)를 통해 남해지선고속도로와 연결되고 있어 부산과 서부경남을 연결하는 교통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낙동강 동안을 따라 남북으로 발달한 낙동로를 비롯해 사상로·김해공항진입로 등의 간선도로와 경부선 철도의 사상역, 서부시외버스터미널 등이 위치해 있다. 괘법동에 위치한 시외버스터미널은 과거에 부산의 구 조방 앞에서 출발, 경남 서부지역에서 오던 버스들로 인한 도심지 교통체증 현상을 해소하고 사상지역을 기점으로 서부 경남으로 통하는 원활한 교통체제를 형성하기 위해 1985년 이전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마산·창원·남해·창녕·합천·진지·산청·거창 등 노선별로 시외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한편 사상구 지역은 낙동강에 연해 있어 과거에 가포나루터, 덕포나루터가 있었으며 지금은 감전동과 강서구를 잇는 서부산낙동강교가 건설되어 있다. 1981년 준공된 이 교량은 부산과 마산간의 교통량의 증가와 창원공업단지 조성으로 물동량이 증가해 새로운 4차선 고속도로 건설이 필요함에 따라 부마고속도로와 함께 건설되었다.

관광

사상구 지역은 예부터 낙동강에 연해 있어 경관이 매우 뛰어났다. 괘법동에는 『동래부지』(1740) 고적조에 “팔경대(八景臺)는 부(府: 동래부) 서쪽으로 30리 부근 사천촌(沙川村) 낙동강변에 있는데 경색(景色)이 소상(瀟湘)과 같아 이렇게 부르고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소상은 중국 호남성(湖南省)의 소상팔경과 같다는 뜻으로 당시 이곳의 풍치가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덕포동에 소재한 상·하강선대도 경치가 매우 뛰어났다. 당산이 있으며 이곳에는 옛날 신선이 내려 목욕을 하고 쉬고 갔다는 전설이 있다. 전설이 생길 무렵 이 강선대는 섬이었거나 강선대 옆으로 맑은 물을 담은 못 같은 것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강선대는 도로와 주택으로 둘러싸여 옛 정취를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시민들이 자주 찾는 관광자원으로는 삼락동에 소재한 강변고수부지가 있다. 구포에서 삼락동에 이르는 낙동강의 고수부지로 본래 이곳은 낙동강 삼각주의 사주로서 대부분 갈대밭으로 이루어진 저지대였으나 1932년 낙동강 직강 공사로 사상제방이 축조되면서 제방과 낙동강본류 사이에 토사가 퇴적되어 넓은 고수부지가 형성되었다. 현재 시민 체육공원으로 되어 있는 이 강변 고수부지는 강변을 따라 갈대를 비롯한 수초가 무성하여 자연습지로서 학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곳이다.

공단이 들어서기 전, 낙동강에서 담수어를 잡거나 재첩을 거두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가운데도 엄궁동에 면한 낙동강에는 재첩이 많이 잡혔다. 재첩은 민물의 모래바닥에 사는 가막조개를 말하며 재첩을 삶은 국이 재첩국이다. 강기슭이나 강에 배를 띄워 철사로 만든 채 같은 갈퀴로 모래를 긁어 올려 모래가 빠져나간 뒤에 남는 재첩을 거두었다. 이에 따라 강변 강가 지역은 재첩과 재첩국이 유명했다. 1970년대부터 산업화로 인한 낙동강 오염으로 재첩의 수확량이 줄어들자 사상지역의 재첩국 명성은 그 이름을 잃어갔다.

삼락동은 딸기로 유명하다. 삼락 강변의 고수부지 모래밭에 농민들이 딸기를 심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였다. 관·배수가 좋아 딸기 재배의 적지로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딸기는 품질이 뛰어나 인근의 구포를 통하여 전국 각지로 판매되었다. 한편 삼락동에서 생산되는 딸기인데도 구포에서 판매되는 것은 구포딸기라고도 했다. 삼락동딸기는 1970년대에 들어 일반 고등채소에 밀려 생산이 줄어들면서 옛 명성을 잃어갔다. 낙동강 하류 지역인 사상구 지역에는 예로부터 잉어와 장어가 많이 잡혔고 이를 요리하는 음식점이 많았다.

사상구에서 열리는 달집태우기는 사상 강변축제와 더불어 2대축제의 하나이다. 매년 정월대보름 열리는 행사로써 각 마을별로 실시되어 오고 있었으나 1999년 사상문화원이 개원되면서 고증을 거쳐 2000년도부터 사상구민의 축제행사로 낙동강변의 삼락체육공원에서 개최하고 있다. 길놀이를 시작으로 높이 20미터의 대형달집을 만들어 월령기원제를 지내고 달이 뜸과 동시에 달집에 불을 태우는 이 행사는 영남권에서 가장 큰 달집태우기행사로써 각종 민속놀이를 병행하고 있다. 매년 5월에는 사상강변축제가 삼락강변체육공원을 비롯한 사상구 전역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개최되고 있다.

스포츠 시설로는 삼락동에 소재한 간이 운동장이 있다. 축구장·야구장·배구장·사이클경기장·씨름장이 갖추어져 있어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낙동강 연안에는 낚서터가 여러 곳 있다. 그 중 엄궁동에 소재한 낚시터는 일제강점기부터 붕어낚시의 명소로 알려져 있었다. 엄궁동의 다리 건너 소재한 배수장 옆에는 양어장이 있어 유료낚시터로 이용된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부산 임시수도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서 낚시질을 즐겼다는 일화가 있다.

동(洞)
  1. 학장동

사상구 중앙 남쪽에 위치한 동이다. 지명은 이곳에 동서로 자리 잡고 있는 학성(鶴城)과 장문(場門)의 두 마을을 합치면서 유래하였다. 『동래부지』(1740)에 ‘장문리’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시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성은 엄광산 기슭에 위치한 학성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학장동 지역은 조선시대에 동평현으로 들어가는 입구로서 군사상의 요지였으므로 엄광산 기슭에 학성을 축성하였는데, 현재도 주례동 쪽으로 성터가 남아 있다. 1995년 북구에서 사상구 관할이 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감전동

사상구 중앙에 위치한 동이다. 산지가 거의 없는 평지에 둘러싸여 있으며 낙동강 연안에 조성된 삼각주의 북쪽은 삼락동에 속하고, 남쪽은 감전동에 속한다. 『동래부지』(1740)에 기록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괘내리 혹은 주례리에 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남도동래군가호안』 사상면에 감동과 서전동의 동리명이 수록되는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이곳에는 낙동강으로 통하는 수로(水路)가 있어 배가 드나들었으며, 선착장과 생선회를 파는 술집이 많이 있었다. 지금도 감전동 지역은 유흥가가 밀집되어 있다. 인구증가로 감전1·2동으로 분동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괘법동

사상구 중앙 북쪽에 위치한 동이다. 조선시대 지명은 괘내리(掛乃里)였으며 바닷가나 강변에 있는 마을 또는 물이 고여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지금의 사상역 앞에는 가파른 절벽이 있어 벼랑산이라고도 하던 벼락산이 있었고, 여기에는 경관이 뛰어난 팔경대(八景臺)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상역은 1921년 건설된 것으로 우암동으로 향하는 가야선의 분기역이다. 서부시외버스터미널이 인근에 있다. 1963년에 부산진구 소속으로 되었다가 1978년에 북구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에 사상구 관할이 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모라동

사상구 북단에 위치한 동이다. 지명의 유래는 군취(群聚)의 뜻의 고대어인 모을·모들·마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으나 1968년에 사상지구의 저습지대가 개발되어 공업단지가 되면서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마을을 지나는 경부선 철도 동편 산록에는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형성되어 있고, 서쪽 저지대에는 공장지대가 조성되었다. 1995년에 사상구 관할이 되었으며 이후 인구 증가로 모라1·2·3동으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삼락동

사상구 북서부에 위치한 동이다. 조선시대 소요리(所要里)라고도 하였다. 지명은 마을이 인근의 모라동과 덕포동의 서쪽 낙동강변에 형성된 삼각주에 위치하였다 하여 유래되었다. 사상제방 동쪽의 저습지대는 지면이 낙동강보다 낮아서 배수가 잘 되지 않는 지역이었는데, 1968년부터 이 지대가 개발되어 공업단지가 되면서 삼락동 지역은 많은 변화를 거듭하였다. 구포에서 삼락동에 걸쳐 있는 제방은 현재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1978년 북구에 속했다가 1995년에 사상구 관할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주례동

사상구 중앙 동쪽 내륙에 위치한 동이다. 엄광산과 백양산을 등지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북서쪽이 주례1동이고 남동쪽이 주례2동이다. 지명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마을의 공동생활을 위한 조직체를 의미하는 ‘두레’를 한자화하여 ‘주례(周禮)’가 되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부산시에 편입되고 사상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이 지역의 인구가 급증하고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공업단지는 주로 사상구의 서쪽에 있으므로 주례동 지역은 주택지구로 형성되었다. 1995년에 북구에서 사상구 관할로 바뀌었으며, 인구 증가로 주례1·2·3동으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엄궁동

사상구 남부에 위치한 동이다. 지명은 신성한 신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고, 마을 동쪽에 있는 엄광산 기슭에 있는 동네로 낙동강에서 바라 본 동리의 모양이 활과 같아서 활 궁(弓)을 붙여 ‘엄궁’이라 하였다고도 전해진다. 낙동강에 연해 있고 서쪽으로 열려 있어 일출 시간이 늦을 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낙동강의 세찬 바람이 불어와 주거지역으로는 부적합한 마을이었다. 사상공업단지가 들어선 후 지역의 모습이 점차 변모하였다. 인근의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천연기념물, 1966년 지정)는 지리적 조건과 기후, 생태계 등의 여건이 좋아 세계적인 철새서식지 및 도래지이다. 1995년에 북구에서 사상구 관할로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덕포동

사상구 북서부에 위치한 동이다. 옛 지명은 덕개이로 이중 ‘덕’은 언덕을 의미한다. 언덕에 있는 포구라는 의미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당시 포구는 상강선대와 하강선대의 중간에 있는 바위 언덕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시화로 경관이 훼손되기 전까지 사상구에서 경치가 뛰어난 곳으로 꼽혔다. 1968년부터 저지대를 매립하여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시가지로 발전하였다. 제방을 쌓으면서 사상 일대의 중요성과 축제(築堤)의 필요성, 동원된 인원수를 기록한 축제혜민비(築堤惠民碑)가 3곳 있다. 1995년에 북구에서 사상구 관할로 되었으며 이후 인구증가로 덕포1·2동으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통계연보』(부산광역시 사상구, 2008)
『부산통계연보』(부산광역시, 2005)
『구정백서』(부산광역시 사상구, 2005)
『부산교육통계연보』(부산광역시 교육청, 2005)
『부산의 당제』(부산광역시, 2005)
『한국지리지』경상도편 (건설부국립지리원, 2005)
『부산의 민속문화』(세종출판사, 2003)
『부산민요집성』(세종출판사, 2002)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2)
『부산지명총람』(부산광역시, 1995∼2002)
『부산의 문화재』(부산광역시, 1993)
부산광역시 사상구(www.sas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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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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