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부산광역시) (())

부산광역시 서구청
부산광역시 서구청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부산광역시 남서부에 위치한 구.
정의
부산광역시 남서부에 위치한 구.
개관

동쪽으로 중구와 동구, 서쪽으로 사하구, 북쪽으로 부산진구와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남해와 연하고 있다. 동경 129°00'∼129°01', 북위 35°03'∼35°07'에 위치하며, 면적은 13.93㎢, 인구는 11만 5963명이다.(2015년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13개 행정동(24개 법정동)이 있다. 구청은 부산광역시 서구 토성동4가에 있다.

자연환경

북쪽은 엄광산, 구봉산, 구덕산, 시약산이 연해있어 지세가 비교적 험준하고 연봉의 일부가 남쪽으로 줄기를 뻗어 아미산, 천마산·장군산·진정산을 이루며 남항을 감싸는 반도로 연결된다. 구덕천이 이들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항에 유입되어 비교적 넓은 평지를 형성하고 있다. 엄광산의 서남쪽으로는 계곡이 발달해 있으며 구덕고개에는 터널이 개통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남항일대가 매립되었는데, 1939년 준공되었으며, 그 결과 지금의 시청에서 남포동·충무동·남부민동에 이르는 지역은 대대적인 매립에 의해 등장한 매축지이다.

가장 높은 산지는 엄광산(嚴光山, 舊 高遠見山)이다. 부산진구(개금동), 동구(좌천동)와 경계를 이루며 금정산맥의 주능선에 솟아 있다. 이 산은 북쪽으로 백양산과 마주하며, 남쪽으로 구덕산으로 이어진다.

동대신동에 소재한 구덕산(九德山)은 북구와 사하구의 경계를 이룬다. 북동쪽으로는 엄광산과 백양산 그리고 상학봉으로 연결되면서 금정산의 고당봉에 이어지고, 남서쪽으로 시약산과 승학산에 차례로 이어지면서 다대포의 몰운대까지 산세를 뻗치고 있다. 전형적인 노년산지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보수천의 발원지인 동쪽 산록에는 부산 최초의 급수원인 구덕수원지가 있다.

아미동에 소재하면서 사하구(감천동)와 경계를 이루는 아미산(峨眉山)은 아미동 일대에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구릉성 산지로 천마산의 연맥에 해당된다. 산록이 완만하여 산정의 일부를 제외하면 현재 도시화에 따른 주택지대로 변모하였다. 산 지명은 원래 이곳에 있던 마을을 ‘아미골’이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나 정확한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남부민동에 소재한 천마산(天馬山)은 사하구(감천동)와의 경계를 이룬다. 엄광산에서 남쪽으로 송도반도까지 이어지는 부산항 등줄산맥의 산정 가운데 하나이다. 산록이 완만하여 옛부터 목마장으로 이용되기도 한 산이다. 지명은 이곳의 풍수 형국을 ‘갈마음수(渴馬飮水)‘ 형국 해석에 기인한다는 설과 이곳에 있었던 목마장과 관련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명 석성산으로 불린다. 암남동에 소재한 장군산(將軍山)은 천마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등성이가 대한해협에 몰입하여 형성된 송도반도(또는 암남반도)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구릉성산지의 특색을 지니고 있는 장군산은 산림으로 뒤덮여 있는데다 남쪽으로 멀리 대한해협을 넘어 쓰시마를 바라다볼 수 있고 동쪽과 서쪽에는 송도만과 감천만이 자리 잡고 있어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산이다.

암남동에 소재한 송림산(松林山)은 송도해수욕장의 동쪽에 자리 잡은 독립 구릉이다. 본래 이산은 천마산에서 이어지는 맥이 남항에 몰입하여 만들어진 섬이었으나 주변 해안이 매립되면서 육지화되고 지금은 송림산으로 불리고 있다. 송도해수욕장이 자리 잡고 있는 일대를 ‘송도’라고 부른 것도 바로 이러한 송림산의 과거 모습에서 비롯된다.

서부지역 산지에는 고개가 발달해 있어 사하구와 연결되는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대티고개는 구덕산의 산등성이에 해당되는 시약산과 아미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해발고도 100∼200m에 이른다. 이 고개는 1930년 새로운 차도가 생기기 전까지 옛 부산 쪽에서 하단지역으로 넘어가는 유일한 교통로 구실을 했다. 하지만 1989년 산복도로와 대티터널이 건설되면서 옛 교통로의 기능은 사라지게 되었다.

아미동에 소재한 까치고개는 천마산과 아미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 서구 아미동과 사하구 괴정간을 연결하는 교통로이다. 지명은 고개 부근에 화장장이 설치되어 위령제가 자주 열려 까치들이 음식 찌꺼기를 먹기 위해 많이 몰려들었다 하여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남부민동에 있는 샛디고개는 암남동으로 넘어가는 천마산의 남쪽 산허리로 지금은 천마로 중에서 ‘송도 윗길’에 해당된다. ‘샛띠고개’ 또는 ‘샛디재’라고도 불렸으며 도시화가 진행되기 전에는 ‘새띠’라 불리는 억새풀과 띠풀이 무성했던 데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지금의 충무동과 남부민동 앞바다가 매축되면서 송도로 가는 아랫길(충무로)이 생겨났지만 이전까지 만해도 이른바 부산에서 송도로 넘어가는 유일한 길은 샛디고개 뿐이었다.

동대신동에 소재한 구덕고개는 옛부터 대신동쪽과 구포쪽을 오가는 교통로로서 구덕터널이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왕래가 잦았던 고개로 이름나 있다. 고개의 남동 산록에는 보수천이 발원하고 북서 산록은 학장천의 발원지이다.

동대신동을 관류하는 구덕천(九德川)은 보수천의 상류에 해당되는 소하천으로 구덕고개의 동남 사면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흘러가다가 서대신4동과 동대신1동을 차례로 관류하여 보수천으로 이어진다. 구덕천은 예부터 이 고장 대신동 일대의 명당수로 불릴 만큼 수질이 깨끗하고 맑은 계류였지만 서대신동과 동대신동간의 도시화가 급진되면서 크게 오염되어 옛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상류에는 구덕수원지가 자리 잡고 있다.

해안에 연해 있는 암남반도는 산지와 만나 급경사를 이루며 암석 해안지형을 이룬다. 충무동 일대의 남항은 수심이 깊어 어선의 출입이 원활하며 송도에는 사빈해안이 발달하였다. 이곳에 과거에 모지포, 부민포 등의 포구가 형성되어 있었다. ‘몰치포’라고도 불리는 모지포는 본래 모짓개에서 비롯된다. 암남공원의 서쪽 끝인 모지포말과 동양시멘트 공장 사이에 만입된 작은 포구로, 앞바다는 수심이 얕고 배후는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신석기시대의 암남동패총이 있었고, 내만의 안쪽에는 모지포마을이 있다.

부민포는 남항의 해안포구 일대의 옛 지명으로 지금의 남포동과 충무동·남부민동 일대에 해당된다. 본래 이곳은 1925년 대대적인 남항 매축공사가 착공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구와 청어잡이를 하던 한적한 어촌이었다. 암남동 앞바다에 있는 두도는 암남반도 남동쪽으로 500m 떨어진 섬으로 동백나무·삐죽이·해송 등이 자생하고 있다.

기후는 바다에 연해 있어 전형적인 온대해양성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은 14.0℃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온난한 지역 중의 하나이다. 1월 평균기온은 0.9℃이며, 일평균기온이 0℃이하의 연평균일수는 10일 미만이다. 8월 평균기온은 25.4℃로 연교차는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적다. 연평균강수량은 1466.2㎜로 비교적 다우지역에 속하며, 연평균풍속은 4.4㎧로 다른 도시들에 비해 강하다.

역사

일제강점기 발굴된 암남동패총에서 무늬 있는 토기 등이 발견되었던 것으로 보아 신석기 말기에는 서구 지역에 취락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대신동의 현 동아대 지역에서도 마제석검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삼한시대 변진 12국 중 하나에 속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거칠산국의 영역에 속했다가 6세기 초, 신라의 영토팽창으로 신라에 병합되어 거칠산군에 편입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정 때 동래군으로, 대증현도 동평현으로 개칭됨에 따라 서구도 동평현에 속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 초 이곳은 후백제와 고려가 세력을 다투던 곳으로, 견훤과 왕건 간의 일화를 보면 당시 서구 지역은 후백제의 지배를 받았다고 추측된다. 고려 후기 서구는 동평현의 영역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고려 말기 왜구의 침략이 거세지자 동평현에 속하였던 서구는 동래군에 귀속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 일대가 대일방어상 요충지로서 인근에 관방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천마산 일원에 설치된 목장은 절영도의 목장과 함께 당시 동래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목장이었다. 조선후기 초량왜관이 인접한 중구 일대에 들어서면서 이곳은 부분적으로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되기도 하였다. 개항 이후 부민동 일대를 중심으로 근대적인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조선시대 사천면의 하단이 신초량리·구초량리·대치리·목장리·감천리·독지리·서평리·다대리 등의 9개 리로 구성되어 있던 것으로 보아 당시 구초량리와 대치리 등이 현 서구 지역에 해당됨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 이후 이 지역은 급속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행정지명은 일본식 동 지명으로 바뀌었으며 현재의 동 지명은 대부분 이때 만들어졌다. 또한 일본인 주거지가 대신동을 중심으로 확장되었으며 일본식 도시경관을 나타냈다. 해안은 매축되어 항만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1910년 종전의 부군의 명칭과 관할구역을 정하면서 동래부가 부산부로 바뀌고, 1914년에는 관할구역이 변경되면서 오늘날의 서구 지역은 부산부에 속하게 되었다.

광복 후에는 1951년 구제 실시를 전제로 6개의 출장소가 설치되었는데, 현 부산시청을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서부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57년 구제로 변경되면서 서구가 발족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었던 서구의 지역특성은 대부분 그대로 이어졌다. 부산의 관공서·교육·의료 기관 등 공공시설이 이곳에 집중되었으며, 공동어시장, 수산물 가공공장이 많아 수산물 집산지 기능도 담당하였다.

도심 지역인 중구와 인접한 대신동·부용동·부민동 일대는 주택지로 개발되어 최근까지 부산시의 고급주택지구를 이루고 있다. 특히 동대신동은 부산의 대표적인 주택지구이다. 부민동에는 아미산 기슭에 주택지구가 형성되었다. 대신동은 구덕운동장과 많은 학교가 밀집해 교육중심지 구실을 하고 있다. 1975년 구 직할의 사하출장소가 시작할 출장소로 승격되었고, 1983년에는 사하구가 분리되어 나갔으며, 현재 법정동으로는 서대신동2가(西大新洞二街)·서대신동1가·서대신동3가·동대신동1가(東大新洞一街)·동대신동2가·동대신동3가·부민동1가(富民洞一街)·부민동2가·부민동3가·부용동1가(芙蓉洞一街)·부용동2가·토성동1가(土城洞一街)·토성동2가·토성동3가·토성동4가·토성동5가·아미동1가(蛾嵋洞一街)·아미동2가·초장(草場)·충무동1가(忠武洞一街)·충무동2가·충무동3가·남부민(南富民)·암남(巖南) 등 24개 동이 있다.

유물·유적

사찰로는 내원정사, 보문사 등의 여러 사찰이 있다. 내원정사는 조계종으로 구덕산의 구덕령 동쪽에 위치해 있다. 이 사찰에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부산 유형문화재, 2000년 지정)이 소장되어 있다. 목판본 14권 6책으로 되어 있으며 흔히 『법화경(法華經)』이라고도 하며, 『화엄경(華嚴經)』과 함께 가장 많이 간행되어 국내에 유포된 불교경전이다. 이 『묘법연화경』은 1632년(인조 10) 삭령(朔寧) 용복사(龍腹寺)에서 간행된 7권 3책과 1649년(인조 27) 양산 통도사(通度寺)에서 간행된 것이다. 간행연도와 간행처가 명확하여 수많은 『묘법연화경』의 간행내역 등을 밝히는 데 중요한 표식이 된다.

이 사찰에는 『염불보권문』도 소장되어 있다. 1765년(영조 41) 구월산 흥률사에서 간행한 1책의 목판본으로 아미타의 극락세계와 이에 관한 염불의 중요함을 한문과 언해(諺解)로 병기하는 등 일반 대중에게 공덕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편집되었다. 특히 책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 「왕랑반혼전(王郞返魂傳)」은 염불공덕을 주제로 한 불교 소설로 우리나라 소설 발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암남동에 소재한 패총은 송도해수욕장에서 남으로 2㎞ 쯤 떨어진 지금의 동물검역소 자리에서 발굴되었다. 일제강점기 발굴되었으며 유물들은 약간의 빗살무늬토기와 숫돌 1점, 갈아서 만든 돌도끼 2점, 조개팔찌 1점, 뼈로 만든 첨두기 등으로 알려져 있다.

동대신동에 소재한 동아대학교박물관은 중요한 문헌자료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 이중 개국원종공신녹권(국보, 1962년 지정)와 동궐도(국보, 1995년 지정)가 대표적이다. 공신녹권은 1397년(태조 6) 10월 공신도감에서 왕명에 의하여 개국원종공신 사재부령(司宰副令) 심지백(沈之伯)에게 은전(恩典)을 내린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이 녹권은 조선 초기의 고문서로서 이두문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과 그 문체와 내용에 있어서도 매우 귀중한 사료이다.

동궐도는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 동쪽에 자리한 창덕궁과 창경궁을 함께 그렸다하여 동궐도라 하며, 16책의 화첩으로 세로로 다섯 번 접어서 가로 6.5㎝, 세로 45.5㎝의 화책 형태인 것을 전체크기 가로 584㎝, 세로 275㎝에 이르는 16폭 병풍으로 만든 것이다. 이 병풍은 회화사적인 면에서도 매우 우수하고 중요하지만 조선시대 궁궐의 배치와 짜임새, 아름다움과 웅장함, 건축과 조경의 양태, 기타 시설물의 설치 상태 등을 총체적이고 포괄적으로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주요 유형문화재는 주로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중 보물로는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보물, 1975년 지정), 쌍자총통(보물, 1975년 지정), 안중근의사유묵(보물, 1972년 지정), 융기문 발(보물, 1975년 지정), 의령보리사지금동여래입상(보물, 1982년 지정), 조대비사순칭경진하도병(보물, 1982년 지정), 지자총통(보물, 1986년 지정), 지장보살삼존도(보물, 1998년 지정), 초총도수병(보물, 1975년 지정), 헌종가례도병(보물, 1982년 지정) 등이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부산농악(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1980년 지정)과 구덕망깨소리(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2001년 지정)가 있다. 지금의 아미동과 토성동 일대에서는 풍농을 기원하는 지신밟기가 성행했으며, 예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다. 아미농악은 마당굿과 우물굿 그리고 농사놀이·풍년굿 등 농민의 안태축원굿 계통이던 것이 근래에 와서 오락굿으로 변형된 것이다. 현재 전하고 있는 부산 농악의 내용은 모듬굿-길굿-인사굿-맞춤굿-호호굿-마당굿-문굿-오방진-우물굿-연산다드래기-농사풀이-풍년굿-소고놀이-개인놀이(상쇠, 소고, 장고, 대북)-12발상모돌리기의 순으로 편성되어 있다. 구덕망께터다지기는 광복 이전 구덕산 아래 대신동 일대에서 큰 집터를 다질 때 망께질을 하면서 불렀다. 현재 경남고등학교(1956년 건립)의 교사를 지을 때 망께로 터를 다지면서 구덕망께터다지기소리를 불렀다고 하는데, 현재 부산구덕민속보존협회에서 주관되어 전승되고 있다.

남부민동에는 신라·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성산성의 터가 있다. 『동래부지』산천조에 “석성산은 동래부의 남쪽 40리에 있는데 옛날에는 봉수가 있었으나 현재는 구봉으로 옮겨져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천마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구의 침탈이 심했을 때 이 정상에 석성을 쌓았던 것으로 보이며 천마산으로 지명이 바뀐 것은 이 일대가 목마장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교육·문화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11개교, 중학교 8개교, 고등학교 7개교, 특수학교 2개교,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치과대학·간호대학, 동아대학교 구덕캠퍼스·부민캠퍼스, 고신대학교 송도캠퍼스가 있다.

근대교육기관으로서 1906년 토성동에 일본인여자 교육기관으로 지금의 부산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부산여자공립고등여학교가 설립되었다. 서대신동에 소재한 동아대학교는 1946년 개교하였으며 1959년 종합대학교로 승격하였다. 1985년 8월 하단캠퍼스에 대학본부와 문과대학 건물을 준공하여 이전하면서 하단 및 대신동 양 캠퍼스 체제로 나누어졌으며, 1987년 3월 하단캠퍼스를 승학캠퍼스로, 대신동 캠퍼스를 구덕캠퍼스로 명칭 변경하였다.

여러 예술관과 전시관이 문화의 중심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서대신동에 소재한 구덕민속예술관은 서부산 지역의 전통문화의 전당으로서 무형문화재 전승보급과 전래하는 민속예술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부산시에서 건립하였다.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인 부산농악과 구덕망깨전수관은 무형문화재 정기발표회, 전수생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동대신동의 민속생활관은 옛날 생활용품과 민속품을 용도별로 분류하여 전시할 뿐 아니라 전통 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속

송도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민속이던 달집태우기를 변화 전승시켜 세시풍속을 유지하고 있다. 축제를 통한 해상 달집태우기와 다양한 민속놀이 및 태평기원 제례행사, 소망쓰기, 오곡밥시식회 등 특색 있는 정월대보름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상고시대 우리나라에는 봄과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하늘에 제(齊)를 올렸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데, 오늘의 농악은 이와 같은 제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부산농악은 타지역 농악에 비해 느린 4박자의 굿거리장단이 많이 사용되고 춤이 많이 들어있는 특징이 있다. 농사풀이, 북춤, 들버꾸놀이가 독특하며 세련되어 있다. 상모돌리기와 12발 상모돌리기의 기능도 수준이 높다. 노는 판굿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으며 풍물구성은 쇠2, 징2, 북4, 벅구8, 들벅구8, 양반1, 포수1, 하동1, 호적1, 농기1, 영기2 등 35명으로 되어 있다.

한편 서구 내의 각 마을에는 당산이 있다. 동대신동의 영령당, 꽃마을 동산과 미륵당이 있으며 서대신동에는 시약산 당산, 아미동에는 까치골 당산, 초장동의 천마산 당산 등이 있다.

또한 구덕망께터다지기에서 사용되는 터다지기 소리는 부산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터다지기에는 큰 망께와 작은 망께를 사용하며 일꾼들이 오방에서 망께터다지기 선소리에 맞추어 후렴을 제창한다. 이는 크게 소리 내어 집터를 고루 다지면서 협동정신으로 통해 노동력을 올리는데 목적이 있다

산업·교통

농업은 산기슭과 암남반도 일대에서 소규모로 행해지고 있다. 보수천 하류의 충무동로터리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매립지로서 수산물 가공공장과 냉동회사가 있으며, 남해안 각지에서 집산된 수산물의 거래가 활발한 곳이다.

남항 앞의 방파제는 남항 유일한 방파제로 길이는 400m이며 서단에는 소형 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1926년부터 1939년에 이르는 남항 매축의 일환으로 1931년에 축조되었으며, 이때부터 남항에 정박하는 모든 선박의 피난처 구실은 물론 부산 제1의 낚시터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남부민동에 소재한 부산공동어시장은 생산어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1963년 제1부두에 설립되었다. 1971년 ‘부산공동어시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73년 현 위치로 이전하여 개장하였다. 부산공동어시장은 부산시 소재의 부산시수산업협동조합, 대형기선저인망수산업협동조합, 대형선망수산업협동조합, 서남구기선저인망 수산업협동조합, 경남정치망수산업협동조합 등 5개의 수산업 협동조합이 공동으로 설립하였다. 위탁판매사업을 중심으로 한 여러 사업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교통으로는 중앙에 사하구와 중구를 연결하는 간선도로가 있으며 해안과 샛티고개에 구내의 각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건설되어 있다. 사하구와는 1989년 개통된 대티터널로 이어지며 북구와는 구덕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서대신동에 소재한 구덕터널은 서대신동과 북구 학장동 사이에 있는 터널로서 길이 1870m, 폭 9.4m 의 쌍굴터널이다. 1984년에 준공된 이 터널은 순수 민간자본에 의해 건설되었다. 구덕산 허리를 동남에서 북서쪽으로 관통하는 이 터널이 개설됨에 따라 서구 지역과 북구 지역의 도로교통은 물론 부산의 도심 교통 체증이 해결되었다.

관광

해안을 끼고 있어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암남동 앞바다에 있는 두도에는 동백나무·삐죽이·해송 등이 자생하고 있다. 무인등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1972년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 섬은 육지와 가까워 낚시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많이 잡히는 고기로는 노래미, 뽈락 등이다.

송도해수욕장은 1931년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해수욕장이다. 소나무로 자생하는 송림공원과 마주하고 있으며, 지금도 송도 서쪽 산언덕에서 이어지는 케이블카와 송림공원에서 놓인 구름다리를 이용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명소이다. 동쪽 앞바다에는 바위섬인 거북섬이 있다. 모양이 거북과 닮았다 하여 지명이 유래되었다.

부민동의 임시수도기념관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한국전쟁기 부산 임시수도 시절 경상남도 도청이 중앙정부청사가 되고, 도지사관사가 당시의 대통령관저로 사용되었다. 1983년 경상남도 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하게 되자 부산시에서 건물을 매입하여 한국전쟁 때의 각종 사진자료 등을 전시하는 임시수도기념관으로 보수 활용되었으며, 2018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남부민동에는 재래시장인 새벽시장이 열리고 있다. 중구 충무동에 이어지면서 열리는 이 시장은 매일 새벽2∼3시경에 서서 오전 9시경에 파장한다. 채소, 과일, 어물, 농산물 등을 주 업종으로 하는 농수산물시장이지만 산지상인, 시내 여러 시장과 점포 상인은 물론, 이들을 상대로 막걸리, 해장국, 국밥 등을 파는 상인들로 붐빈다. 또한 새벽시장은 부산의 하루를 가장 먼저 여는 시장으로 전국적으로 매우 유명하다.

동대신동에서는 매주 구덕문화장터가 열리고 있다 구덕운동장 동쪽 도로변에 위치하고, 우리의 전통민속품, 고미술품, 옛날 생활용품, 고서 등을 사고 팔며 구경할 수 있는 풍물시장으로 전국에서 모여든 고미술회원 104명이 참여하고 있다. 매년 5월이면 개장기념으로 전통놀이 공연과 떡매치기, 엿치기, 투호놀이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개최된다.

문화에술 축제로는 현인가요제, 송도바다축제, 송도해상달집축제, 구덕골문화예술제 등이 있다. 현인가요제는 부산 출신으로서 한국 1세대 대중가수 현인을 추모하는 축제이며, 송도 바다축제는 매년 8월 1∼3일까지 송도해수욕장에서 개최되는 바다축제이다. 이 축제는 해변가요제, 해상퍼레이드, 해산물 맛자랑대회, 모래조각전 등과 장어 나르기, 얼음 위 오래 버티기, 황토팩 마사지, 씨름대회 등으로 구성된 여름해변축제이다. 한편 구덕골문화예술제는 매년 10월에 구덕야영장과 교육역사관에서 개최된다.

동대신동에 소재한 동아대학교박물관에는 많은 국보와 보물을 소장되어 있으며, 이를 공개·전시하고 있다. 1959년 중앙도서관(현 석당도서관) 3층에 진열실을 마련해 창설되었으며 1966년 현재의 박물관 건물로 이전 개관되었다. 소장품은 2008년 현재 국보 1점, 보물 11점, 지방유형문화재 1점, 금속제품 1561점, 토도 제품 4339점, 서화탁본 1839점, 불상 79점, 발굴문화재 8670점 등 2만 3444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으며, 특히 가야시대 유물들이 많다. 동대신동에 소재한 구덕민속예술관은 1991년 준공 개관된 예술관으로 부산민속예술관·수영고적민속예술관에 이어 3번째 시립예술관이다.

스포츠 시설과 여러 공원이 있다. 동대신동에 소재한 구덕운동장은 부산 체육의 요람으로 사직운동장이 건립되기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의 중심시설이었다. 1920년 부산공설 운동장으로 시작되었으며 운동장이 개설된 이후 운동행사 뿐만 아니라 경축행사와 궐기대회 등이 열렸다. 1982년 동래구 사직동에 사직운동장이 개장되자 구덕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8년 10월에는 서울올림픽대회의 축구경기가 이곳에서 열렸다.

암남동에 소재한 장군산 일대는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있다. 1972년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자연상태 그대로의 이 공원은 해양성 식물이 자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암남동의 송도해수욕장은 동쪽의 거북섬에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송도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1913년 일본인에 의해 개발된 이후 많은 해수욕객들이 이용하였으며, 거북섬과 해수욕장 서쪽 산언덕을 잇는 420m 거리의 케이블카는 1964년 설치되었다.

동(洞)
  1. 남부민동

서구 중앙 남부에 위치한 동이다. 부민동에 속해 있다가 1913년 부산 부제(府制) 실시에 따라 남부민동으로 분리된 동으로 부민동과 함께 부민포(富民浦)라고 부르던 곳이다. 옛날 억새풀과 띠풀이 많아 새뛰 또는 샛띠라고 불렸고 이는 초량(草梁)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 1963년에 설립된 부산공동어시장과 새벽시장이 있으며, 남항방파제는 남항의 유일한 방파제로, 소형등대가 있다. 인구 증가로 행정동인 남부민1·2·3동으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부민동

서구 중앙에 위치한 동이다. 지명은 보수천 하구의 부민포(富民浦)에서 유래한다. 부민포는 부산의 옛 명칭인 부산(富山) 사람들이 쓰던 포구라는 뜻이며, 지금의 남포동·충무동·남부민동 일대에 해당된다. 이곳에 천석을 하는 부자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지명이 기원하였다는 설도 있다. 과거에 법원·검찰청 등의 사법기관이 집중하였으나 현재는 연제구로 이전되었다. 임시수도기념관은 한국전쟁 때 부산이 임시수도가 된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였던 곳이다. 1914년에 부민리(富民里)로 바뀌었고, 1931년에는 부민정(富民町)이라 하였다. 1947년에 대안동(大安洞)으로 바뀌었고, 1959년에 부민동으로 개칭하였다. 행정동인 부민동은 법정동인 부민동1∼3가와 부용동1·2가로 이루어져 있다.

  1. 동대신동

서구 북부에 위치한 동이다. 대신동이라는 지명이 처음 생긴 것은 1914년으로 추정된다. 대신동은 보수천의 호안공사 이후 일본인이 대거 밀려와서 생긴 새로운 시가지를 한 새벌 이라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한새벌의 ‘한’은 큰 길을 한길이라 하듯이 큰 대(大) 또는 태(太), 새는 새로운 이라는 뜻의 신(新), 벌은 넓은 땅이란 뜻을 가진 동(洞)이므로, 대신동은 한새벌의 한자씩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대신정으로 되었다가 1926년 동대신정과 서대신정으로 구분하면서 동대신정1·2·3정목과 서대신정1·2·3정목으로 분할되었다. 광복 이후인 1947년 동대신1·2·3가로 개칭하였다가 1959년 동대신1·2·3동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 서대신동

서구 북서부에 위치한 동이다. 공공기관으로는 구덕도서관·서부경찰서·서부산세무서·서구청·서부교육지원청 등이 있다. 사찰로는 1905년에 지은 서대신동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용화사가 있고, 보문사·관음정사·수도사 등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닥밭골마을·고분도리마을·꽃마을 등이 있다. 닥밭골은 대신동의 옛 지명으로 닥밭이 있던 골, 즉 닥나무가 많이 나는 골이라는 뜻이다. 고분도리 마을은 서구청 뒤편 언덕 지역에 있었던 마을로서 고리짝을 만드는 들이란 의미이다. 옛날 보수천가에는 버드나무가 많았고, 이 버드나무를 이용하여 고리짝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생긴 명칭이다. 꽃마을은 서대신4동 구덕산 기슭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명칭은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몰려와 꽃 재배를 생업으로 삼았던데서 유래하였다. 지금도 이곳은 부산의 대표적인 화훼단지이다. 일제강점기 대신정(大新町)이라고 하였고 1926년에 동대신정과 서대신정으로 분리되었다. 1959년 서대신1∼3동으로 바뀌었으며, 1970년에 서대신3동을 분동하여 서대신4동이 신설되었다.

  1. 암남동

서구 남부에 소재한 동이다. 암남반도 남단에 자리 잡고 있으며, 천마산 남쪽 기슭에서 해변까지의 송도가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지명은 아미동의 유래가 된 아미골의 남쪽이란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신대학교 송도캠퍼스와 부속병원인 고신의료원이 있고, 혈청소(血淸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국립동물검역소 부산지소가 암남공원 내에 있다. 혈청소 옆에는 자연마을로 모깃개라는 마을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을 모지포(毛知浦)·모짓개 또는 모치포 등으로 부르고 있다. 1936년에 부산부로 편입되었고, 1957년에 서구 관할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 토성동

서구 중앙에 위치한 동으로, 행정동인 충무동 관할 하에 있다. 지명은 마을에 토성이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토성은 1906년부터 파괴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면적은 4000평 정도였을 것으로 짐작되며, 축조 양식이 반월형인 것으로 보아 신라 또는 가야 때의 성으로 추정된다. 토성동은 부산대학교부속병원이 있어 인근의 동아대학교부속병원과 함께 부산 의료기관의 중심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외에 한국전력공사 중부산지점과 기독종합사회복지관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부민동 일부가 분할되어 토성정1∼3정목이라 하였다. 토성정1∼3가라 하였다가, 1959년 1월 부산시 동제 개편으로 토성동1∼3가와 초장동1∼2가가 병합되어 토성동이 되었다.

  1. 초장동

서구 중앙 남부에 위치한 동이다. 1913년 부산 부제(府制) 실시로 부민동과 남부민동이 분리된 후에 생긴 동이다. 이곳은 초원이 좋아서 용마가 하강한 곳이라는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 이곳에 초원이 많아 목마장이 입지한 것으로 보인다. 목마장이 영도의 절영도 목마장으로 옮겨지기게 되면서 목마장이란 이름이 초장으로 바뀌어 불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8·15광복 후에 초장동 인구가 증가하면서 1·2동은 토성동으로 편입되었고, 당시의 3동은 현재의 초장동이 되었다.

  1. 부용동

서구 중앙에 위치한 동으로, 행정동인 부민동 관할에 있다. 보수천가의 섬 같이 생긴 형태로 말미암아 원래 행정구역상 부민동에 속한 곳이었지만 부용동으로 통칭되었다. 지명은 이곳에 부용화가 많이 피어 있어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동래구 사하면 일부를 부산부에 편입하면서 중도정(中島町)이 되었다가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부용동이 되었다.

  1. 충무동

서구 중앙 동남부에 위치한 동이다. 원래 부민포에 속한 해변이었으나 1918년 대정공원(현 충무초등학교 자리)이 설치되면서 그 아래로 광장이 생겨났으며 도로 개설로 인해 로터리가 생겼다. 로터리가 되기 이전의 충무로 광장은 당시 부산에서 가장 넓은 지대였기 때문에 많은 군중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였다. 일제강점기 모든 행사와 집회 등이 자주 여기에서 개최되어 부산의 심장부 역할을 하였다. 대정(大正)공원도 일본 천황의 연호를 이용한 것처럼 이곳도 소화정(昭和町)이라 불렸다. 광복 후 이곳의 명칭을 정할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부산해전 승전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우고 충무동로터리로 명명하였고, 1947년 충무로 1∼5가로 고쳤다. 1982년 충무로4가는 충무동1가에, 충무로5가는 남부민동에, 완월동(玩月洞) 1가는 충무동2가에, 완월동2가는 충무동3가에 포함시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 아미동

서구 중앙에 위치한 동이다. 사하구의 경계를 이루는 구릉성 산지인 아미산(峨嵋山)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지명은 움집을 의미하는 ‘애막’이라는 옛말이 변하여 한자로 아미(峨嵋)가 되었다는 설과 이곳에 있었던 반월형의 토성을 아미월(峨嵋月)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부산 각지에 흩어져 있던 공동묘지를 아미산으로 옮기고, 화장장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화장장 일대의 마을을 화장골이라고 하였는데, 1957년에 화장장이 이전되고 개발이 진행되면서 지금은 화장골의 모습이 사라졌다. 1914년에 부민동 일부를 분할하여 곡정1·2정목이라고 하였으며, 1947년에 아미동1·2가로 바뀌었다. 1998년 행정동인 아미1·2동을 합쳐 현재와 같은 명칭인 아미동이 되었다.

참고문헌

『통계연보』(부산광역시서구, 2008)
『부산통계연보』(부산광역시, 2005)
『구정백서』(부산광역시서구, 2005)
『부산교육통계연보』(부산광역시교육청, 2005)
『부산의 당제』(부산광역시, 2005)
『한국지리지』경상도편(건설부국립지리원, 2005)
『부산의 민속문화』(세종출판사, 2003)
『부산민요집성』(세종출판사, 2002)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2)
『부산지명총람』(부산광역시, 1995-2002)
『서구장기발전기본계획』(부산광역시 서구, 1992)
『서구향토지』(서구향토지편찬위원회, 1991)
부산광역시 서구(www.seogu.busan.kr)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김기혁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