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문신학자인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의 『미암일기』(보물, 1963년 지정)가 소장되어 있는 모현관에 함께 보존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고문서이다. 2004년 9월 20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어, 선산유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16∼19세기에 걸친 조선시대의 고문서류 238점으로, 가장 오래된 문서는 1566년(명종 21)에 유희춘이 함경도 종성(鍾城)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오자, 미암의 둘째누나[吳妹]가 전답과 노비를 유희춘에게 별급(別給)한 문서이다. 그리고 김해김씨(金海金氏)의 분급문기(1570년경, 크기 세로 350㎝, 가로 52㎝)는 김일손(金馹孫)의 증손녀가 유희춘의 손부(孫婦)로 시집오면서 부친인 김장(金鏘)에게서 재산을 분급받은 문서로 보이며, 울산김씨(蔚山金氏)의 분급문기(1583년)는 유희춘의 자부(子婦)이자 하서 김인후(金麟厚)의 딸인 울산김씨가 2남 1녀에게 재산을 분급한 문서이다. 유희춘 관련 자료는 유희춘이 처가에서 분급받은 분재기(分財記), 유희춘이 자녀들에게 분급한 분재기, 유희춘 후손들의 시권(試券), 호구단자와 준호구 등 호적자료(戶籍資料), 문중 산송(山訟)과 관련된 청원서(請願書) 등이다.
한편, 유희춘을 배향한 의암서원(義巖書院) 관련 문서도 있는데, 이에 의하면, 1607년(선조 40) 창평에 삼천사(三川祠)를 건립하고 유희춘을 배향했는데, 1630년경 담양으로 이건하면서 백천사(白川祠)로 개칭하였다가 1669년(현종 10)송준길(宋浚吉)의 상소로 사액되면서 의암서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삼천사 건립 시 작성된 영건유사기(營建有司記)와 유생안(儒生案) · 서재안(西齋案) · 보직안(保直案)이 있다. 이후 자료들은 17∼18세기 유희춘의 본관인 선사유씨가(善山柳氏家)의 산송(山訟)과 관련된 소지(所志) · 단자(單子) · 원정(原情) 등 청원서, 문중 후손들의 호구(戶口) 자료와 매매문서들이다.
모현관 소장 고문서 · 고문헌 자료는 임진왜란 이전 시기의 고문서가 8건이나 있으며, 그 이후의 자료도 많아 조선시대의 사회경제사와 제도사, 생활사의 변모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된다. 특히 김해김씨의 분급문기와 울산김씨의 분급문기는 임진왜란 이전의 재산 상속 관계를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