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610년, 조선 전기 문신 유희춘을 추모하기 위해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에 창건한 서원.
내용
1667년(현종 8) 담양의 사림들과 유희춘의 후손들은 백천사의 사액을 받기로 의논하여 정하였다. 이후 1668년(현종 9)에 유희춘의 고손자인 유진석(柳震錫, 1635~1671)이 전라도 도내에 통문을 돌려 공론을 형성하였다. 1668년 9월에 백천사 유생 진사 배기(裵紀)도 통문을 돌려 공론을 일으켰다. 10월 12일 중학(中學)에 소청(疏廳)을 두고 청액소를 작성하였다. 상소문은 사간 최계옹(崔季翁이 지었고, 10월 16일 배기가 소두가 되어 승정원에 제출하였다. 이후 12월 5일 소대에서 좌참찬 송준길이 특별히 사액을 내릴 것을 요청하여 사액이 결정되었다. 12월 14일에는 교서와 액호(額號)를 예문관에서 지어 올리도록 했으며, 1669년(현종 10) 10월 13일에 ‘의암(義巖)’이라 결정하고, 예조정랑 강복선(姜復先)을 치제관으로 파견하여 사액례를 거행하였다.
의암서원에서는 1690년(숙종 16)부터 유희춘의 문묘종사를 추진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692년(숙종 18)에는 유희춘의 고손자이자 신독재 김집(金集)의 제자인 전 참봉 류진석을 의암서원에 배향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전라도 사림들의 상소가 있었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정조대에 『오경백편(五經百篇)』, 『아송(雅頌)』, 『춘추좌전(春秋左傳)』 등의 서적을 내사(內賜) 받았다.
1848년(헌종 14)에는 문루인 술계루(述稽樓), 1862년(철종 13)에는 유희춘이 받은 어혁(御靴), 서원에 내려진 어서(御書) 등을 보관할 어서각(御書閣)을 건립하였다. 1871년(고종 8) 훼철된 후 복원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인조실록(仁祖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대동지지(大東地志)』
- 『조두록(俎豆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미암집(眉巖集)』
- 『영양세고(永陽世稿)』
단행본
- 『전남의 서원(書院)·사우(祠宇): 사액서원·사우편(賜額書院·祠宇篇)』(목포대학교 박물관·전라남도, 1988)
논문
- 윤희면, 「담양 의암서원의 설립, 사액 그리고 철폐」(『역사학연구』 57, 호남사학회, 201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