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서원은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에 있었던 조선 전기 문신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의암서원이 있는 담양은 유희춘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다. 담양의 사림들은 추월산 아래 황룡강 위에 자리를 잡고서 1607년(선조 40)에 사우 건립을 추진하여 1610년(광해군 2)경에 삼천사(三川祠)를 만들어 제향했다. 1633년(인조 11) 문절(文節)이란 시호를 받은 것을 계기로 향교 근처로 이건하였다. 이때 백천사(白川祠)로 명칭을 고쳤다.
1667년(현종 8) 담양의 사림들과 유희춘의 후손들은 백천사의 사액을 받기로 의논하여 정하였다. 이후 1668년(현종 9)에 유희춘의 고손자인 유진석(柳震錫, 1635~1671)이 전라도 도내에 통문을 돌려 공론을 형성하였다. 1668년 9월에 백천사 유생 진사 배기(裵紀)도 통문을 돌려 공론을 일으켰다. 10월 12일 중학(中學)에 소청(疏廳)을 두고 청액소를 작성하였다. 상소문은 사간 최계옹(崔季翁이 지었고, 10월 16일 배기가 소두가 되어 승정원에 제출하였다. 이후 12월 5일 소대에서 좌참찬 송준길이 특별히 사액을 내릴 것을 요청하여 사액이 결정되었다. 12월 14일에는 교서와 액호(額號)를 예문관에서 지어 올리도록 했으며, 1669년(현종 10) 10월 13일에 ‘의암(義巖)’이라 결정하고, 예조정랑 강복선(姜復先)을 치제관으로 파견하여 사액례를 거행하였다.
의암서원에서는 1690년(숙종 16)부터 유희춘의 문묘종사를 추진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692년(숙종 18)에는 유희춘의 고손자이자 신독재 김집(金集)의 제자인 전 참봉 류진석을 의암서원에 배향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전라도 사림들의 상소가 있었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정조대에 『오경백편(五經百篇)』, 『아송(雅頌)』, 『춘추좌전(春秋左傳)』 등의 서적을 내사(內賜) 받았다.
1848년(헌종 14)에는 문루인 술계루(述稽樓), 1862년(철종 13)에는 유희춘이 받은 어혁(御靴), 서원에 내려진 어서(御書) 등을 보관할 어서각(御書閣)을 건립하였다. 1871년(고종 8) 훼철된 후 복원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