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부여 만수산 무량사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을 비롯하여 시왕상과 그 권속 등 21구는 1633년(인조 11) 극락전 아미타삼존불좌상을 완성한 후 어느 시점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명부전의 존상들이 봉안된 무량사는 신라 문무왕 때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사지(寺誌)에 전하고 있지만, 5층석탑과 석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중창되어 법등이 이어져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다시 중심 불전인 극락전과 그 안에 봉안된 소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17세기 전반에 조성되었다. 통일신라 말에는 고승 무염(無染), 조선 초에는 김시습(金時習)이 활동하였고, 인조 때에는 진묵대사(震默大師)가 활동하였다.
명부전은 저승, 황천(黃泉), 염라부(閻羅府), 지부(地府) 등 보통 지옥이라는 곳으로 사람이 죽어서 심판을 받는다는 저승의 법정이다. 즉 죽은 자의 영혼과 산 자의 선행을 위해 세워진 건물이다. 그 일을 담당하는 존상들인 지장보살과 협시인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 그리고 시왕(十王)과 그의 권속인 귀왕(鬼王), 판관(判官), 사자(使者), 동자(童子), 인왕(仁王) 등이 있다. 지장삼존은 지옥에 있는 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시왕은 사람이 지은 죄의 경중을 가려 판단한다. 귀왕은 시왕을 보좌하고, 판관은 그 죄를 기록하며, 사자는 사람의 죄를 시왕에게 보고하고, 동자는 시왕의 시중드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인왕은 이 세계를 지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명부전의 중앙 불단에는 지장보살좌상과 협시상인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입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 양쪽으로 시왕상이 5존씩 의자에 앉아 있는데, 지장삼존상의 왼쪽으로는 제1진광대왕(秦廣大王), 제3송제대왕(宋帝大王), 제5염라대왕(閻羅大王), 제7태산대왕(泰山大王), 제9도시대왕(都市大王)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제2초강대왕(初江大王), 제4오관대왕(五官大王), 제6변성대왕(變成大王), 제8평등대왕(平等大王), 제10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이 배치되어 있다. 그 양쪽으로는 대칭적으로 귀왕입상, 판관입상, 사자입상이 각각 1존씩 배치되어 있는데, 좌판관상과 좌사자상이 서로 위치가 바뀌어 있다. 그리고 불단 아래의 문 쪽으로 인왕상이 양쪽으로 서 있다. 이러한 배치는 조선시대 명부전의 일반적인 배치형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시왕을 시중드는 동자상이 없다는 점이다. 모두 분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장보살상은 녹색의 민머리에 불(佛)형식의 옷을 입고 결가부좌하고 있는 보살상이다. 지장보살상을 상징하는 녹색의 민머리를 제외하면 불상과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지장보살의 특징인 두건이나 보주, 석장 등도 표현되지 않았다. 얼굴은 네모난 형태로 평면적인 양감을 가지고 있다. 백호는 크게 돋을새김을 하였고, 이목구비는 적당하다. 인중은 깊고 넓게 표현되었고 턱이 둥글게 조형된 점이 특징적이다. 삼도는 목 아래에서 직선으로 형식화되었다.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하여 얼굴이 작은 편이지만 인상은 위엄이 느껴진다.
신체는 하체에 비하여 상체가 길어 17세기적인 세장한 이등변삼각형 구도를 보여 주지만 어깨는 당당한 편이다. 신체는 얼굴에 비하여 양감은 없지만 어깨와 무릎, 배 등에는 환미감(丸美感)이 느껴진다. 팔은 원통형으로 상체와 붙어 있어 경직되어 있으며 양 손은 허벅지 위에 놓았다. 왼손은 하늘을 향하고 오른손은 무릎을 향하고 있는데, 조선시대 17세기 후반에 유행한 수인이다. 결가부좌한 다리는 상체에 비하여 낮은 편이지만 안정감이 있다. 보살의(菩薩衣)는 천의(天衣) 형식이 아니라 불의(佛衣) 형식의 옷을 입고 있으며, 가슴 아래 중앙에 보이는 옷은 승각기(僧脚崎)로 보이고, 양쪽 어깨에 보이는 옷은 대의(大衣)와 가사(袈裟)를 입은 이중 착의 형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직선적인 경향이 강하지만, 다리 앞쪽의 옷주름은 자연스럽다. 다리 앞쪽의 비교적 자연스러운 부채꼴 모양의 옷주름선은 17세기의 경향이 강하다. 대좌는 팔각형의 대좌받침은 조성 당시의 것으로 보이지만, 불상을 직접 받치는 연화좌(蓮華座)가 없어 온전한 것이 아니다.
도명존자는 승복을 입고 신발을 신고 합장을 하고 서 있는 수행자의 모습이다. 얼굴에 비하여 신체가 늘씬하여 세장한 비례를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어깨가 좁은 점을 제외하고 지장보살상과 다르지 않다. 무독귀왕은 왕의 복식과 관모를 착용하고 신을 신고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어 왕으로서의 격을 갖추었다. 전체적으로 얼굴이 세장하고, 아래턱에 수염이 길게 난 점이 다를 뿐 지장보살상과 동일한 양식이다.
시왕상은 무독귀왕과 동일한 형태를 보여 주고 있는데, 의자에 앉아 있는 점이 다르다. 대부분 손에 홀을 들고 있지만 책이나 꽃가지, 필기구 등을 들고 있는 경우도 있어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제5염라대왕상과 제6변성대왕상의 관모 위에 책을 쓰고 있는 점, 제10오도전륜대왕상이 장군의 복식을 착용하지 않았지만 머리에 날개 모양을 하고 반가좌를 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귀왕은 전체적으로 무독귀왕상을 따르고 있지만 격이 낮게 표현되었다. 판관상은 사모관대를 하고 있어 신하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손에 경책을 들고 있다. 사자상은 무장형을 하고 있으며, 소매자락이 날리고 있어 운동감을 보여준다. 우사자상의 지물은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렵고, 좌사자상은 원래 창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지만 지금은 없다. 인왕상은 지장보살상의 형상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매우 큰 얼굴에 높은 상투를 하고 이목구비가 과장되어 있다. 상체는 우인왕상이 어깨를 살짝 덮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나형(裸形)이며, 하체는 사자와 같은 무장형의 옷을 입고 있다. 천의자락이 머리 뒤쪽에서 반원형으로 돌아나가는 형식은 조선시대에 유행한 특징이다. 명부를 지키는 형상이 잘 표현되었다.
이 존상들은 허리가 세장한 신체비례, 평판적이고 경직된 신체, 원통형의 장방형 얼굴, 구부러진 약지, 옆으로 돌아가 형식화된 Ω자형 옷주름, 다리 부분의 부채꼴 모양 옷주름선 등에서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17세기 중후반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색채는 대체로 금칠을 한 지장보살상 이외의 존상들은 모두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였다.
무량사 명부전 존상들은 거의 완벽하게 잘 배치되어 있어 조선시대 명부신앙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이다. 다만, 좌판관상과 좌사자상의 자리가 바뀐 것은 수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존상들은 세장하여 신체비례가 좋으며, 인상이 온화하고 색채가 다양하고 아름다워, 조선시대 불교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