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제천 금수산 정방사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 관음보살좌상과 그 복장에서 수습된 유물들이다. 이 불상의 발원문에 “康熙十八年歲(강희십팔년세)”라고 기록하고 있어 조성연대가 1689년(숙종 15)임을 알 수 있다. 정방사는 662년(문무왕 2)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기록은 없고 1825년(순조 25) 지금의 법당을 세웠다고 전한다. 법당은 원통보전이라는 편액을 걸고 있지만, 관음보살상만을 봉안하기 위하여 세운 건물이 아니라 신앙대상과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인법당으로 세운 것이다. 이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정방사의 중심 예배 대상인데, 양양 낙산사와 대구 파계사 등 관음보살상이 중심이 되는 사찰이 더러 있지만 이 경우와는 다르다.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원래 독존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라 삼존불의 좌협시인 관음보살상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복장발원문에 사찰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어 정방사에서 전수된 보살상인지도 알 수 없다.
이 보살상은 보관을 쓰고 불형의 옷을 입고 결가부좌한 불상이다. 높은 상투를 틀고 보발을 어깨 위로 세 가닥으로 늘어뜨리고 있다. 조성 당시의 것으로 보기 어려운 보관을 쓰고 있는데, 화염보주문, 꽃문양, 팔매트문양 등이 새겨져 있다. 정면에는 화불이 조각되어 있어 관음보살임을 나타낸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네모난 형태이지만 볼에는 양감이 드러난다. 조선시대 일반적인 불상의 신체에 비하여 얼굴이 작은 편이다. 이목구비는 적당하게 표현하였으며 귀에는 원형의 꽃문양 귀걸이를 하고 있어 인상이 단아하고 원만하다. 삼도는 목걸이처럼 가슴에 치우쳐 형식적으로 표현하였다.
상체는 당당하지만 평면적이며 어깨가 좁고 가슴은 양감이 거의 없다. 팔은 옷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상체와 붙어 있어 경직되어 있다.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렸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놓아 원래 아미타삼존불의 협시보살임을 보여주고 있다. 왼손은 바닥을 앞쪽으로 하고 오른손은 하늘을 향하고 있는데 원래 모습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살상과 가장 유사한 고운사 극락전 아미타삼존불좌상의 우협시보살상과 같이 원래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 손 모양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 하체는 안정되어 있다. 옷으로 덮여 있고, 무릎의 둥근 맛이 사라지고 직선적인데, 조선 후기의 형식화 경향을 보여준다.
보살의(菩薩衣)는 보살상이 입는 천의(天衣) 형식이 아니라 불의(佛衣) 형식이다. 가슴 아래 중앙에는 승각기를 입고 띠를 두르는데 띠매듭이 없다. 양쪽 어깨에 보이는 옷은 대의(大衣)와 가사를 입은 이중착의 형식이다. 특히 배까지 늘어진 옷자락은 조선시대에는 대체로 U자인 데 반하여 이 불상에서는 凵(감)자처럼 아랫부분이 넓고 직선적으로 표현된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고운사 극락전 아미타삼존불좌상, 1730년 충주 창룡사 보살좌상 등에서도 나타나,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유행된 것으로 판단된다. 옷주름선은 전체적으로 대칭적이며 추상적인 선미감이 두드러진다.
복장유물은 조성연대, 작가, 발원자를 알 수 있는 필사본 「발원문(發願文)」과 판본 「묘법연화경」, 판본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 다라니」, 판본 「범자(梵字) 다라니」 등 4종이 발견되어 주지실에 봉안되어 있다. 특히 다라니 2종에는 卍(만)자가 나타나 있어 특징적이다.
이 불상은 옷자락이 배까지 늘어져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대체로 U자인 데 반하여 凵(감)자처럼 아랫부분이 넓고 직선적으로 표현된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옷주름선은 전체적으로 대칭적이며 추상적인 선미감이 두드러진다.
이 보살상은 발원문을 통하여 조성연대, 작가, 발원자 등을 알 수 있는 불상으로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의 보살상 양식을 규명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