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불상에 통화 20년의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작연대는 1002년(목종 5)으로 판단된다. 통화는 거란족이 세운 요(遼)의 연호로, 거란의 침입에 시달렸던 고려가 외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불사를 일으켜 천성사를 창건하고 이 절에 불상을 봉안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동안 땅에 묻혔던 것이 일제강점기 때 사금을 채취하던 사람들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일본인들이 이 불상을 매입하여 보관하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철물로 공출되었던 것을 주지 임흥군 화상이 거두어 지금의 만일사에 봉안하였다. 이 불상의 모습은 일본 도쿄대학 소장의 통화 28년명 금동보살입상 3구와 매우 비슷함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 “統和二十八年聖居山天聖寺(통화28년성거산천성사)”라는 명문이 있어 이들 보살상들이 같은 계열의 상들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보살상의 머리 뒤에는 둥근 연화문 바탕에 화염문이 표현된 두광이 있고 머리에는 화불(化佛)을 이고 있다. 화불이 주형(舟形) 거신광배(擧身光背)를 가진 좌불이며 보관에 표현되어 있어, 이 불상은 관음보살상으로 추정된다. 보살의 귀 뒤로 어깨까지 보발이 늘어뜨려져 있고, 상호는 살이 찐 둥근 장방형이며 오관이 약간 집중된 모습이다. 상체는 나신으로 가슴에 영락(瓔珞) 장식을 둘렀는데, 두 개의 반원형 장식 사이에 하나의 술이 늘어뜨려져 있고 가운데 술은 다시 끝이 세 가닥으로 갈라져 있다.
어깨는 좁은 편이고 가슴까지 약간 통통하게 살이 쪄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다. 양 팔뚝에 고리 장식을 끼고 있으며, 손목에도 팔찌를 끼고 있다. 오른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보주 혹은 약환으로 보이는 둥근 물체를 엄지와 검지로 살짝 집고 있다. 치마를 입고 허리 윗부분을 띠로 묶어 앞으로 늘어뜨렸으며, 왼쪽 어깨에 걸쳐진 천의(天衣) 자락과 함께 허리 뒤에서 나온 옷자락이 무릎 앞을 가로지른다. 치마는 발목 위에서 입체적인 Ω형 주름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대좌는 복련의 연화대좌로 각각의 연꽃잎의 끝이 살짝 위로 반전되어 매우 입체적이다.
이 금동보살입상의 보관에 화불이 있고, 한 손에 보주를 들고 다른 손에 정병을 든 점, 가슴의 영락 장식이 두 개의 반원 사이에 하나의 긴 술이 내려오는 모습 등에서 고려 초 금동보살입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