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평리의 일명 탑평마을에 있는 삼층석탑으로, 2003년 6월 13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주변에서 수습되는 도자기와 기와편들로 보아 고려 전기인 11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각종 문화유산 자료에 단층기단의 삼층석탑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현재는 기단 갑석 아래 부분이 시멘트로 고정되어 있어 확인할 수 없으며 남아 있는 탑신의 비례도 균형을 잃고 있어 일부 층의 탑신이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뒤쪽 능선으로 연결되는 근처 엄정면 괴동리에도 고려 말의 억정사대지국사비(億政寺大智國師碑)가 남아 있어 고려 말까지 이 지역 일대가 사찰과 불교문화가 융성하였던 곳이었음을 알려준다.
탑 높이는 2.3m이며, 기단 갑석의 크기는 146×146㎝, 초층 면석의 크기는 81×81㎝이다. 2매의 판석으로 조성된 기단 갑석 위에 아무런 조식 없이 초층 탑신이 놓였는데, 이 점은 각 층이 동일하다. 초층 탑신석은 2·3층과 현격한 체감을 보이는 등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고 있다. 옥신과 옥개석이 각각 잘 다듬어진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으며, 각 층 탑신 양쪽에는 우주가 모각되었다. 낙수면 물매는 급한 편이며 전각에는 반전이 경쾌하다. 옥개석 받침은 각 층 4단으로 정연한 치석 솜씨와 함께 통일신라 시기의 양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각 옥개석 모서리 양쪽으로 풍경을 달았던 2개의 원공(圓孔)이 뚜렷이 남아 있다. 상륜부는 한 돌에 새겨진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으나 한동안 땅 위에 방치되어 있었던 듯 마모가 심하다.
탑은 뒤로 낮은 구릉이 있고 경사면이 벌판으로 이어지는 지역에 서 있으며, 석탑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주변의 경작지에서 인근 마을까지의 3천여 평에서 주초석과 다량의 기와편, 도자기 등이 출토되고 있으나 사찰의 명칭은 확인할 수 없으며 뒤쪽 능선에서도 동일 사찰의 암자가 있었던 듯 많은 기와편들이 존재한다.
신라시대 전형양식을 계승하였으나 세부적으로 다소 퇴화된 일면을 보이는 고려 초 11세기의 유물로 사찰의 폐지와 함께 다양한 손상과 변형이 가해 진 모습이다. 당시 이 지역 역사를 전해 주는 소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