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인

  • 예술·체육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 「굳세어라 금순아」 등을 부른 가수.
이칭
  • 이칭현동주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연주
  • 사망 연도2002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19년
  • 출생지부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미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 「굳세어라 금순아」 등을 부른 가수.

개설

현인은 부산 출생으로 본관은 연주(延州). 본명은 현동주(玄東柱)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현인은 1938년 경성제2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2까지 우에노[上野]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였다. 그는 1943년 징병을 피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신태양극단’에서 활동하다가 1946년에 귀국했다.

1947년에 작곡가 박시춘(朴是春)의 권유로 대중가요 가수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신라의 달밤」은 그 시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후 한국전쟁 전까지 「비 내리는 고모령」, 「고향만리」를, 전쟁 중에는 군예대로 활동하면서 진중가요 「전우야 잘 자라」를 발표하였다. 같은 시기에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와 「인도의 향불」, 「꿈 속의 사랑」, 1950년대 후반에는 「나포리 맘보」, 「불국사의 밤」 으로 지속적인 인기를 모았다. 특히 「서울야곡」 등은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다. 그는 195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서, 일제강점기의 트로트와 신민요를 소화하였고, 미국식 대중가요가 개화한 1960년대의 팝 스타일의 가창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KBS특별가요대상, 1996년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본상(골든디스크 부문), 1999년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3년 현인의 고향 부산 영도에 「굳세어라 금순아」 가사가 새겨진 현인노래비가 동상과 함께 세워졌다.

참고문헌

  • - 『한국대중가요사』(이영미, 시공사, 1998)

  • - 『한국가요전집』1∼5(세광출판사, 198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