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곡 ()

대중음악
개념
음반 출반, 방송, 공연 등의 공적 발표가 금지된 노래.
정의
음반 출반, 방송, 공연 등의 공적 발표가 금지된 노래.
개설

노래에 대한 정치권력의 금지 정책은 노래의 공적 발표 행위가 존재할 때에 의미 있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노래에 대한 금지는 가능하지도 않으며 효용성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개 금지곡이란 용어는, 노래가 대중매체나 공연 시장을 통해 대중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근대 이후에 본격화한 개념이며, 특히 대중가요에 주로 통용되는 개념이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의 금지곡은 음반 수록이 금지된 노래와, 음반에 수록되어 유통되고 있으나 방송이 금지된 노래로 크게 나뉜다. 그러나 공연장 안에 임검(臨檢) 경관이 존재했던 일제강점기에는 이외의 노래도 상황에 따라 금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금지곡이란 용어는 그 의미와 범위가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이나,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여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연원 및 변천

음반에 대한 법적 규제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6월 ‘축음기레코드취체규칙’의 발표로 시작된다. 해방 후에는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오다가 1965에 ‘음반에관한법률’을 제정하여 법제화하였고, 1980년대에 비디오물을, 1990년대에 게임물까지를 포함하여 1999년에 ‘음반·비디오물및게임물에관한법률’로 개정되었다. 이들 법률에 의해 심의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1966년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가 설립되었고, 1976년 한국공연윤리위원회, 1997년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 1999년부터 영상물등급위원회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1996년에 이르기까지 음반에 대한 심의는 제작·발매 이전에 의무화되어 있는 사전심의(事前審議)이며, 국가를 대신한 공공기관에 의해 이루어지며 노래 발표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검열 성격의 심의였다.

내용

이렇게 1996년 이전까지 음반의 강제적 사전심의로 노래가 통제되는 것은 두 경우로 나뉜다. 아예 제작 당시에 사전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음반 발표가 이루어지지 않은 노래와, 음반 발표 사후에 문제 제기가 이루어져 재심을 통해 금지 처분을 받은 곡이 그것이다. 전자는 대중매체에 발표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중가요라 볼 수 없으며 일반 수용자는 그 노래의 존재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주로 금지곡이란, 사후 심의에서 금지 처분이 내려진 후자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금지곡 처분이란 노래에 대한 검열적 통제 전체에서 보자면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창작자·제작자를 위축시키는 것은 간혹 발생하는 금지곡처분이 아니라, 아예 음반발매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사전심의이기 때문이다. 한편, 방송금지곡은 전 방송 차원의 금지곡과 각 방송사의 개별 심의에 의해 규정된 금지곡으로 다시 나뉜다. 방송이 대중가요 인기의 주요한 동인으로 작용했던 1960년대 이후 방송 금지 조처는 음반 심의에 버금가는 힘을 발휘했다.

금지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그 표현이 바뀌지만, 크게 공안(公安)의 측면과 풍속(風俗)의 측면으로 나뉜다. 즉 정치권력에 위해를 입힐 수 있는 표현과, 퇴폐나 음란 등 미풍양속을 저해할 수 있는 표현을 금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에는 표절도 중요한 사전심의 기준이었고, 방송 심의에서는 마약 복용 등 가수의 도덕성도 문제 삼는다. 그러나 모든 검열이 그러하듯, 이 역시 노래 발표 혹은 금지가 가져온 사회적 여파를 고려하여 결정하게 되므로 각 시기와 사안에 따라 그 기준은 수시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1960년대 초에는 월북 창작자의 작품이 대거 금지의 대상이 되었고, 한일수교 반대에 대한 지식인들의 여론이 높았던 1965년에는 트로트의 왜색성이 크게 문제가 되었으며, 유신정권 시절 청년과·대학생의 자유주의적 문화를 거세하려 했던 1975년에는 대중가요인들을 대마초 사범으로 처벌하고 이들의 주요 작품을 사소한 이유를 붙여 대거 금지곡으로 묶어버린 예도 있다. 따라서 당대에는 물론 수십 년 동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동백 아가씨」, 「아침이슬」, 「미인」 등도 금지곡에 포함되었고, 이들 중 「아침이슬」, 「사노라면」 등 몇 곡은 구전을 통해 민중가요와 구전가요로 재탄생하여 생명력을 유지했다.

현황

1987년 6월시민항쟁 이후 검열에 대한 문제 제기와 개정투쟁이 꾸준히 이루어졌고, 1990년대 이후 정태춘을 비롯한 민중가요계의 꾸준한 노력을 통해 1996년에 음반 사전심의가 철폐되었다. 따라서 이후에는 음반 금지곡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음반에 대해서는 연령에 따른 등급심의만 남아있다. 그러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각 방송사의 자체 심의가 있어 방송 금지곡은 여전히 존재하는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흔히 금지곡은 권위주의시대를 상징하는 문화적 현상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발표 사후에 금지로 묶인 금지곡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아예 발표 과정에서 삭제나 수정을 종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저해해온 검열성 사전심의 제도이다. 금지곡은 이 제도의 존재를 대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한 현상이었다.

참고문헌

『정태춘 2』(이영미 편, 한울, 1993)
「내가 체험한 1980, 90년대 음반 검열과 음반법」(이영미, 『기억과전망』 25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1)
집필자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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