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항아리는 유개호(有蓋壺)라고도 한다. 뚜껑은 원삼국·삼국시대 횡성 둔내(屯內) 집자리나 강릉 교항리 집자리에서 나온 독처럼 납작한 돌이나 깨진 토기조각을 덮어 놓은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뚜껑으로 따로 제작된 토기가 덮여서 나오거나 뚜껑을 덮을 수 있는 형태를 갖춘 항아리에 한해서 뚜껑항아리라고 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까지는 토기 뚜껑이 제작된 사례를 찾을 수 없지만 초기철기시대부터 사천 늑도유적에서처럼 토기 뚜껑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원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특히 영남지방에서는 항아리가 다양한 와질토기로 제작되는데 그중 아가리가 넓게 펼쳐지는 굽다리긴목항아리〔臺附長頸壺〕에 납작한 형태의 뚜껑을 올린 항아리가 제작된다. 이 그릇은 뒤에 곧은입항아리〔直口壺〕의 형태로 바뀌고 뚜껑의 모양도 바리를 엎어 놓은데 고리손잡이가 달린 모습이 된다.
신라·가야토기 중에는 길이가 60㎝가 넘는 큰항아리에 뚜껑이 덮인 것이 있고 긴목항아리〔長頸壺〕에 뚜껑이 덮이는 것도 있다. 긴목항아리는 5세기부터 신라와 가야지역에서 각별히 많이 생산되었는데 특히 가야지역에서는 뚜껑이 덮이는 뚜껑긴목항아리〔有蓋長頸壺〕가 많이 제작되었다. 백제에는 특징적인 겹아가리토기〔二重口緣土器〕라는 것이 있는데 뚜껑받이 턱을 목둘레에 마련한 짧은목항아리〔短頸壺〕이지만 토기 뚜껑과 함께 나오지는 않는다. 한성백제 시기에 유행했던 검은간짧은목항아리〔黑色磨硏短頸壺〕와 곧은입짧은목항아리〔直口短頸壺〕중에는 토기뚜껑이 덮여 나오는 뚜껑항아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