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로모양토기는 납작한 몸통에 위로 넓게 벌어지는 목과 아래로 펼쳐지는 굽다리〔臺脚〕가 부착된 모양이 질화로와 흡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삼국시대의 화로모양토기는 모두 회색의 와질토기로 제작되었는데 물레에서 회전물손질로 만들지 않고 그릇 몸통을 치밀하게 갈아서 다듬고 그릇 어깨에는 연속마름모꼴무늬, 격자무늬를 새겨 넣어 겉보기에도 장식이 많이 되고 제작에 정성이 들어간 토기임을 알 수 있다.
변한보다는 진한지역의 덧널무덤〔木槨墓〕에서 부장품으로 많이 발견되는데 경주 황성동이나 월성해자 주변유적, 포항 호동유적에서는 주거지 내부에서도 자주 발견되어 실생활용으로도 사용되었던 것 같다.
4세기 이후부터는 회청색경질토기(灰靑色硬質土器)로 제작되는데 마연 정면이 사라지고 새김무늬가 줄어든다. 경질의 화로모양토기는 물레에서 회전시켜 제작되고 특히 굽다리에 뚫은무늬〔透孔文〕로 장식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리고 와질의 화로모양토기가 원래 유행했던 사로국(斯盧國)의 중심지인 경주 일원에서는 회청색경질의 화로모양토기 제작이 크게 줄어든다. 한편 부산, 김해, 그리고 함안과 같은 가야지역에서 4세기경에 크게 유행하다가 4세기 말에 접어들면 대체 기종인 굽다리접시모양그릇받침〔高杯形器臺〕의 출현과 함께 소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