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가 개국에 공을 세운 김회련을 통정대부 공주목사(公州牧使) 겸(兼) 관내권농방어사(管內勸農防禦使)로 임명한 사령왕지(辭令王旨) 1매와 가선대부 해주목사(海州牧使) 겸 권농병마단련사(勸農兵馬團鍊使) 염장관(鹽場官)으로 임명한 왕지 1매 등 2점이다. 1966년 ‘이태조4년 및 6년왕지’라는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2009년에 ‘김회련고신왕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도봉사 내의 연시각에 소장되어 있다.
김회련은 태조가 조선을 건국할 때 그를 받들어 조선 개국에 공을 세운 인물로 조선 건국 직후 검교한성윤(檢校漢城尹)에 임명되었다. 그 후 태조가 개국 공신의 범위를 넓히고자 개국원종공신을 책봉할 때 여기에 뽑혀 1395년(태조 4)에 공신녹권을 받은 바 있다. 이 왕지는 공신녹권과는 별도로 당시 공주목사 겸 권농방어사의 관직과 2년 후 해주목사 겸 권농병마단련사 염장관 직을 제수받고 왕으로부터 받은 사령장이다.
왕지는 조선초 1435년(세종 17)까지만 쓰인 명칭이며, 이후 교지(敎旨)라는 용어로 바뀌었다. 첫 행에 왕지라고 쓰여져 있으나, 관직임명 뿐 아니라 시호를 내려줄 때와 노비나 전지(田地) 등을 하사할 때 작성한 문서에도 왕지라 쓰여 있으므로, 여러 유형의 왕지 중 관직을 임명하는 ‘고신’의 내용을 담은 왕지라는 뜻에서 ‘고신왕지’로 지칭하고 있다.
1395년의 왕지는 정서에 가까운 행서로 쓰여져 있고, 1397년의 왕지는 초서로 쓰여져 있다. 두 문서 모두 보인으로 ‘朝鮮王寶(조선왕보)’를 찍었다. ‘조선왕보’는 태조 · 정종대에 쓰이다가 태종대에는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 전후부터는 ‘시명지보(施命之寶)’로 바뀌었다.
1395년의 고신 왕지는 4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김회련을 통정대부 공주목사 겸 권농방어사에 임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397년 고신 왕지는 모두 5행으로, 김회련을 가선대부 해주목사 겸 권농병마단련사 염장관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통정대부는 정3품 문산계이고, 가선대부는 종2품 문산계에 해당한다. 병마단련사는 정3품 무관 벼슬로 1467년(세조 12)에 병마동첨절제사(兵馬同僉節制使)로 바뀌었다.
이 고신왕지는 『경국대전』이 성립되기 이전인 조선초기 고신의 양식과 초기 관직체계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