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지는 조선초 1435년(세종 17)까지만 쓰인 명칭이며, 이후 교지(敎旨)라는 용어로 바뀌었다. 첫 행에 왕지라고 쓰여져 있으나, 관직임명 뿐 아니라 시호를 내려줄 때와 노비나 전지(田地) 등을 하사할 때 작성한 문서에도 왕지라 쓰여 있으므로, 여러 유형의 왕지 중 관직을 임명하는 ‘고신’의 내용을 담은 왕지라는 뜻에서 ‘고신왕지’로 지칭하고 있다.
1395년의 왕지는 정서에 가까운 행서로 쓰여져 있고, 1397년의 왕지는 초서로 쓰여져 있다. 두 문서 모두 보인으로 ‘朝鮮王寶(조선왕보)’를 찍었다. ‘조선왕보’는 태조 · 정종대에 쓰이다가 태종대에는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 전후부터는 ‘시명지보(施命之寶)’로 바뀌었다.
1395년의 고신 왕지는 4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김회련을 통정대부 공주목사 겸 권농방어사에 임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397년 고신 왕지는 모두 5행으로, 김회련을 가선대부 해주목사 겸 권농병마단련사 염장관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통정대부는 정3품 문산계이고, 가선대부는 종2품 문산계에 해당한다. 병마단련사는 정3품 무관 벼슬로 1467년(세조 12)에 병마동첨절제사(兵馬同僉節制使)로 바뀌었다.
이 고신왕지는 『경국대전』이 성립되기 이전인 조선초기 고신의 양식과 초기 관직체계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