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보성의 은봉종택(隱峰宗宅)과 대계서원(大溪書院)에 소장된 150점의 고문서이다. 은봉은 죽산안씨 안축(安舳)의 손자인 안방준(安邦俊, 1573∼1654)이며, 대계서원은 안방준 사후 그를 추모하기 위해 호남 유림들이 세운 서원이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고문서는 간찰첩본 4점과 고문서 142점, 대계서원 문서 4점 등 모두 150점이다. 2009년 12월 31일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보성 죽산 안씨 집안은 안방준의 5대조 때 입향하여 보성에 세거하기 시작하면서 지역 내에 세력 기반을 구축하였다. 특히 은봉안방준이 유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정묘 · 병자호란 때에 격문을 띄워 의로운 투쟁을 결의하는 등 절의로도 추앙받게 되면서 이 가문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일련의 고문서들은 이 가문의 이러한 사회적 지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먼저 간찰첩본은 안방준과 교유한 명현들의 서간을 엮어놓은 서간첩과, 안방준과 그의 자손들이 교유한 명현들의 서간, 인척 관계에 있던 우계 성혼 집안과 주고받은 서간, 『은봉전서(隱峰全書)』 간행과 배포를 위해 주고받은 서간 등 4책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일반 고문서류는 안방준 이후,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관직 제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교지 · 교첩 · 차첩 · 유지 등의 교령류(敎令類) 문서가 있다. 또한 토지 매매문기가 여러 점 있어서 조선 후기 죽산 안씨 가문의 재산 소유 규모와 경영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그 밖에 산송 관련 소지류를 비롯하여 각종 소지류는 안씨 가문과 지역 사회의 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한편 대계서원은 1657년(효종 8) 지방 유림의 공의로 안방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고, 1704년(숙종 30)에 대계서원으로 사액된 곳이다. 그러므로 대계서원 고문서는 죽산안씨 가문의 위상과 지역 사회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주로 성책류 자료가 소장되어 있는데, 「대계서원진신장의안(大溪書院搢紳掌議案)」 등이 대표적이다. 대계서원의 운영 주체와 보성, 나아가 전라도 지역의 사족 세력의 현황과 유기적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은봉종택 고문서는 조선 후기 죽산안씨 가계의 정치 · 경제 · 사회적 성장 과정과 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교유 관계를 통해 지역 사회에서 사족들의 교유와 이합 집산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덧붙여 명현들의 간찰첩은 서예사적 가치 또한 높다고 할 수 있다. 대계서원 고문서 역시 서원의 운영 현황과 지역 사족들의 서원을 통한 여론 형성 과정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있는 자료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