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 권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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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권4~7
묘법연화경 권4~7
불교
문헌
조선전기 도솔산 안심사에서 신문이 주관하여 1405년에 간행한 불교경전.
이칭
이칭
법화경
정의
조선전기 도솔산 안심사에서 신문이 주관하여 1405년에 간행한 불교경전.
개설

『묘법연화경』은 석가모니의 40년 설법을 한데 모아 요약한 경전으로, 법화사상을 담고 있는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이다. 흔히『법화경』이라고 하며, 가장 널리 알려진 대승 경전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406년에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이 한역(漢譯)한 것이 주로 간행·유통되었고, 그 뒤 송나라 계환(戒環)이 본문의 뜻을 쉽게 풀이한 주해본(註解本) 7권이 유행하였다.

내용

이 책은『묘법연화경』전 7권 중에서 권4∼권7을 1책으로 묶은 것이다. 1405년(태종 5)에 전라도 안심사(安心寺)에서 당시 명필인 성달생(成達生, 1376∼1444)과 동생인 성개(成槪, ?∼1440)가 베껴 쓴 정서본(淨書本)을 새겨 간행하였다.

권4는 60장, 권5은 37장, 권6은 57장, 권7은 54장인데, 1행 20자이며, 크기는 세로 27㎝, 가로 15.8㎝이다. 원래 것으로 보이는 청색의 명주 표지에는 금니(金泥)로 쓴 제첨(題簽)이 남아 있지만 훼손된 상태이다. 책 가운데 판심(版心)의 윗부분에는 ‘법(法)’이라는 책의 이름인 판심제(版心題)가 있고, 바로 아래에는 권수(卷數)가 표시되어 있으며, 아래 부분에는 각 권의 장수(張數)가 표시되었다.

권말에는 권근(權近, 1352∼1409)이 1405년 3월에 쓴 발문이 있다. 그에 따르면, “조계종 대선인 신희(信希) 등이 눈이 어두운 노인들을 위해 글씨를 키워 간행하고자 하였다. 마침 상중이었던 성달생, 성개가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베껴 써 주자 도인 신문(信文)이 안심사로 가지고 가서 간행하였다”고 하였다. 발문 뒤에는 “토산군(兎山郡)부인 김씨” 등의 시주질(施主秩)이 세 면에 걸쳐 있다.

의의와 평가

성달생은『묘법연화경』의 정서본을 세 차례나 썼는데, 이것은 1405년, 1422년, 1443년에 각각 안심사, 대자암, 화암사 등에서 간행되었다. 뒤에 성달생 서체 계통의『묘법연화경』은 모두 세 가지 판본을 바탕으로 번각(飜刻)하였다. 이 책은 세 차례 간행된 원간본(原刊本) 가운데서 가장 앞선 판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묘법연화경』권5∼7(보물, 1988년 지정)과 같은 판본이지만, 권4가 더 있다는 것이 다르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묘법연화경의 판본 연구』(정왕근,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국가기록유산(www.memorykorea.go.kr)
문화재청(www.cha.go.kr)
고려대장경지식베이스(kb.sutra.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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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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