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전기 승려 의천의 주도로 송나라에서 수입한 『대화엄경』 ‘대소주경(大疏注經)’ 120권의 경판 가운데 41첩을 인쇄한 불교경전.
개설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각 권의 끝에는 옛날 이 불전을 열람하였거나 소장했던 사람이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묵서가 있다. 곧 권4에서 권제65까지는 “정사칠월남백사지임희(丁巳七月南白寺持任熙)”와 같이 남백사 지임(持任)인 희(熙)가 열람 또는 소장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정사년은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다. 남백사는 경남 창원의 백월산에 있던 사찰로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되었다. 또 권제4부터 권제116까지의 묵서를 통해, 계축년(1553년)부터 갑인년(1555년)까지 대승사(大乘寺)의 지응(智膺)이 열람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때 시봉(侍奉)은 각원(覺圓)이었다. 대승사는 경상북도 문경에 있는 사찰로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끝으로 권제102와 권제114의 묵서에는 “만력30년 임인(1602년)에 인원(印源)이 경건하게 열람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렇게 이 소는 시간적 차이를 두고, 최소한 세 차례에 걸쳐 열람 또는 이전되면서 전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보물로 이미 지정된 『대방광불화엄경소』 8건 중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1992년 보물로 지정된 권30, 구인사 소장의 권68,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의 권제21,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의 권제48, 64, 83 등 4건은 계명대학교 소장의 『대방광불화엄경소』와 함께 최소한 17세기 초기까지 같은 질(帙)로 전해지던 것들이다. 이 권들이 어느 시기에 분리되어졌는지는 알 수는 없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지정된 이 4건의 각 권의 끝에 있는 묵서와 계명대학교 소장본의 내면의 묵서가 동일한 인물들에 의해서 필사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이후 이 경판은 1424년(세종 6) 1월에 윤인보를 통해 해인사 대장경판을 구청하는 일본사신에게 대장경판 대신에 사급되었다. 당시 사급된 주화엄경판이 대각국사 의천이 입수한 경판이라는 사실은 “주화엄경판은 옛날 종사 대각화상이 어명으로 송나라 조정에 요청하여 바다건너 온 것”이라고 설명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에 건너간 이 경판은 처음 상국사(相國寺)에 안치된 사실까지 박안신의 복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나 이후 일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소장 초조대장경과 『대방광불화엄경소』」(남권희, 『한국학논집』 37, 2008)
- 고려대장경지식베이스(kb.sutra.re.kr/ritk/index.do)
-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library.kmu.ac.kr)
-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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