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의기 권상, 하 ( , )

대승기신론의기 권상, 하 중 상권
대승기신론의기 권상, 하 중 상권
불교
문헌
국가유산
당나라 승려 법장이 『대승기신론』을 풀이한 주석서를 고려 후기에 간행한 목판본 불교 서적.
이칭
약칭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
이칭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문헌/고서
편찬 시기
7세기 후반
간행 시기
14세기경
저자
법장(法藏)
권책수
2권 2책
권수제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대승기신론의기 권상, 하(大乘起信論義記卷上, 下)
분류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10년 10월 25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대승기신론의기』 권상, 하는 당나라 승려 법장이 『대승기신론』을 풀이한 주석서를 고려 후기에 간행한 목판본 불교 서적이다. 전체 상, 중, 하 3권 중 상, 하 2권 2책이 현존하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1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의
당나라 승려 법장이 『대승기신론』을 풀이한 주석서를 고려 후기에 간행한 목판본 불교 서적.
저자 및 편자

법장(法藏, 주1은 중국 당(唐) 대의 승려로, 이른바 주2의 제3조로서 중국 화엄학을 대성(大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字)는 '현수(賢首)'이며, 법호는 '국일법사(國一法師)'이고 ‘향상대사’(香象大師), ‘강장국사’(康藏國師) 등으로 불렸다. 속성(俗姓)은 ‘강’(康)으로, 조상은 서역의 강거국(康居國) 출신이며, 할아버지 때에 장안(長安)으로 이주하였다.

법장은 화엄종 제2조 주3의 제자가 되어 화엄경(華嚴經)을 배웠으며, 지엄이 열반한 후에 출가하였다. 그는 서역 여러 나라의 언어와 범어(梵語)에 능통하여, 80권본 『대방광불화엄경』과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등의 번역에 참여하였다. 평생 『화엄경』을 30여 회 강설하며 화엄 교학의 체계적 정립에 기여하였다. 또한 당시의 불교를 다섯 가지 교리 체계와 열 가지 종파〔 오교십종(五敎十宗)〕로 분류하고, 이 가운데 화엄종을 최고로 평가하였다.

법장은 712년, 당 현종(玄宗) 선천(先天) 원년에 대천복사(大薦福寺)에서 입적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 이외에도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화엄오교장(華嚴五教章)』, 『대승밀교경소(大乘密教經疏)』, 『범망경소(梵網經疏)』, 『화엄강목(華嚴綱目)』 등이 전해진다. 제자로는 홍관(宏觀), 문초(文超), 지광(智光), 종일(宗一), 혜원(慧苑) 등이 있다.

서지사항

책머리에는 ‘대승기신론의기권상’의 권수제와 그 아래에 작은 글자로 ‘병서(幷序)’라 기재되어 있고, 다음 행에 ‘서대원사사문법장술(西大原寺沙門法藏述)’이라는 저자 사항이 있다. 판식을 보면 중앙의 판심에 위쪽에만 가느다란 흑 어미가 보이고 판심제 ‘의기(義記)’ 와 권 · 장차가 기록되어 있다. 사주는 단변이고, 계선이 없고, 1면은 9행 20자이다. 고려 후기에 간행된 판본에서 흔히 보이는 판식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본문에는 구결이 있으며 전체적으로 서미(書眉)에 주석이 필사되어 있다. 상권의 표지는 훼손되었으나 후대에 보수하면서 표제는 묵서로 ‘기신론의기상(起信論義記上)’ 이라 써놓았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권말에는 주4이나 간기가 없어 간행 연대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판각 및 인쇄 상태를 전체적으로 검토하면 고려 말기의 판본으로 추정된다. 원래 상, 중, 하 3책 3권이 완본이나 현존본은 중권 1책 1권이 결본되어 2책 2권만 전한다.

구성과 내용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는 『대승기신론』을 다음의 열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1. 가르침이 일어난 이유[教起所因]
  2. 여러 불교 경론이 속하는 바[諸藏所攝]
  3. 가르침의 분제를 나타냄[顯教分齊]
  4. 가르침이 적용되는 대상[教所被機]
  5. 가르침의 본체[能詮教體]
  6. 가르침이 전하는 핵심 사상[所詮宗趣]
  7. 『대승기신론』 제목의 의미[釋論題目]
  8. 『대승기신론』 저술 시기[造論時節]
  9. 『대승기신론』 번역 시기[翻譯年代]
  10. 『대승기신론』문구에 따른 해석[隨文解釋]

특히 세 번째 항목인 가르침의 분제를 나타냄[顯教分齊]에서는, 먼저 서역의 일조삼장(日照三藏)이 계현(戒賢)과 지광(智光)으로 이어져 내려온 세 가지 시기의 구분법을 언급한 후, 중국에 전래된 소승과 대승의 경전과 논서를 네 가지 종파로 구분한다.

  1. 수상법집종(隨相法執宗): 소승의 여러 부류
  2. 진공무상종(眞空無相宗): 『반야경』과 『중론』 등
  3. 유식법상종(唯識法相宗): 『해심밀경』『유가사지론』
  4. 여래장연기종(如來藏緣起宗): 『능가경』, 『밀엄경』, 『보성론』, 『대승기신론』 등

자신이 세운 기존의 오교판(五教判)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사종판(四宗判)을 제시하여 『대승기신론』을 네 번째 종파에 배치한 것은 전통적인 해석과 매우 다른 점이다.
이 책은 주5의 주석, 원효(元曉)의 주석과 함께 『대승기신론』의 ‘삼대소’(三大疏)로 불리며, 그 중에서 법장의 주석이 가장 널리 읽혔다. 원래는 3권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이후 당나라의 주6이 논과 의기를 합쳐 출간하면서 일부 내용을 삭제한 5권의 책이 널리 유통되었다.

의의 및 평가

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는 『대승기신론』 주석서 중에서 후대 표준이 된 해설서이다. 이 주석서가 언제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 책을 통해 최소한 고려 말기 이전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승기신론의기』의 우리나라 간본으로는 이 책이 현재까지 공개된 것으로는 유일하고, 후대의 보판이 있지만 고려시대 판각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또한 본문에 구결이 포함되어 있어 구결연구에 도움을 주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원전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

논문

김천학, 「『대승기신론의기』의 무애설 : 『탐현기』와의 비교를 중심으로」(『보조사상』 52, 보조사상연구원, 2018)
주석
주1

중국 당나라 때의 승려(643~712). 속성은 강(康). 호는 현수(賢首). 화엄종의 제3조로, 지엄에게서 화엄경을 배웠다. 670년에 칙령에 의하여 출가한 뒤 교학의 대성에 힘썼으며 현장, 일조, 실우난타 등의 역경(譯經) 사업에도 참여하였다. 저서에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

화엄경을 근본 경전으로 하여 세운 종파. 수나라와 당나라 때, 중국 불교의 전성시대에 삼론종, 천태종, 율종, 정토종 따위의 여러 종파와 대립하여 통합된 불교로 성립하였다. 셋째 조사(祖師)인 법장(法藏) 곧 현수(賢首) 때에 크게 성장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신문왕 때에 의상(義湘)이 개종(開宗)하였고, 뒤에 교종(敎宗)이 되었다. 우리말샘

주3

중국 수나라 말기에서 당나라 초기의 승려(602~668). 속성(俗姓)은 조(趙). 존호는 지상대사(至相大師). 화엄종의 제2조로, 육상원융·십현 연기의 뜻을 설교하여 화엄종을 널리 알렸다. 저서에 ≪수현기(搜玄記)≫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4

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大綱)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 우리말샘

주5

중국 수나라의 승려(523~592). 속성은 이(李). 지론종(地論宗) 남도파(南道派)에 속하며 해석학의 제일인자로, 578년에 북주 무제의 불교 금지령에 적극 반대하여 불법을 지켰다. 저서에 ≪대승의장≫ 28권이 있다. 우리말샘

주6

중국 당나라의 승려(780~840). 화엄종의 제5조로 규봉 대사(圭峯大師)라 칭하였다. 교선 일치(敎禪一致)의 입장을 취하였으며, 저서에 ≪원인론(原人論)≫, ≪원각경소(圓覺經疏)≫, ≪우란분경소(盂蘭盆經疏)≫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집필자
박보람(충북대학교 교수, 화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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