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지도 ()

황해도전도(해서지도 제2첩)
황해도전도(해서지도 제2첩)
인문지리
문헌
국가유산
조선후기 황해도 관련 대축척 지도를 3첩 나누어 수록한 지도집.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해서지도(海西地圖)
분류
유물/과학기술/천문지리기구/지리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08년 12월 22일 지정)
소재지
서울 관악구 관악로 1,103동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신림동,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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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황해도 관련 대축척 지도를 3첩 나누어 수록한 지도집.
개설

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첩은 강령, 송화, 옹진, 은율, 장련, 장연, 풍천, 해주 등의 고을지도 8매, 2첩은 황해도 전도 1매, 3첩은 곡산, 금천, 배천, 봉산, 서흥, 수안, 신계, 연안, 재령, 토산, 평산, 황주 등의 고을지도 12매로 구성되어 있다. 황해도의 고을 중 문화, 신천, 안악의 지도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2첩의 황해도 전도를 제외하면 모두 1리 간격의 눈금선(方眼) 위에 지도를 그렸다. 눈금선의 간격은 고을마다 동일하지 않은데, 8.2mm의 것이 가장 많고 6.9mm나 6.0mm의 것도 있다. 1리 눈금선을 그어 지도를 제작한 이유는 거리와 방향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눈금선 지도 중 가장 크고 자세하지만 고을마다 통일성이 부족하여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은 꽤 떨어지는 편이다. 지도의 표현 방법은 일반적인 그림식 지도 계통과 유사하며, 고을마다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 2첩의 황해도 전도는 눈금선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현대지도와 전체적인 윤곽이 상당히 유사하여 정확한 지도의 제작 수준이 높았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황해도 전도에 그려진 고을의 경계선과 해안가의 모습은 20매의 고을지도와 다른 곳이 많아, 다른 자료를 통해 제작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편찬/발간 경위

지도첩의 정확한 편찬 연대가 적혀 있지 않은데, 호서지도(충청도), 호남지도(전라도), 영남지도(경상도), 영동지도(강원도 영동), 함경도전도(함경도) 등 ‘비변사(備邊司)’의 인장이 찍혀 있는 대축척 고을 지도첩과 함께 1750년 안팎에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든 고을 지도에 1리 눈금선이 그려져 있어 중앙에서 모든 고을에 정확한 지도를 그려 올리라는 지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국가에서 확보한 고을지도는 1720년 안팎에 제작된 그림식 고을지도책(또는 첩) 계통으로, 강조하고 싶은 정보를 확대, 과장하여 그렸기 때문에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이에 거리와 방향이 정확한 고을지도를 확보하겠다는 국가의 의지가 반영되어 그려진 고을지도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지도첩이라 할 수 있다.

서지적 사항

고을의 면적에서 상당한 편차가 있기 때문에 지도의 크기 역시 다양하다. 고을의 지도 중 가장 큰 해주(海州)의 세로×가로 크기가 134×137cm이고, 가장 작은 송화는 47×75cm이며, 황해도 전도는 117×99cm이다. 지도의 크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책으로 묶여있지 않으며, 34.6×22.5cm의 첩 표지에 맞게 접어서 보관하였다. ‘비변사(備邊司)’의 인장이 3첩의 배천 지도 뒷부분에 찍혀 있어 비변사에서 소장하며 사용한 지도임을 알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비변사인 방안지도(備邊司印 方眼地圖)’로 명명되고 있다.

내용

1·2·5첩의 고을지도에는 정확하고 자세한 고을지도를 확보하겠다는 국가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지만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에서는 수준이 높은 편이 아니다. 조선에서 확보한 거리 정보는 대부분 산 넘고 물 건너 구불구불 실제로 가는 길 위의 거리 정보이기 때문에 이를 평면의 직선 정보로 전환할 수 있는 전문 과정이 전제되어야 정확한 지도가 제작될 수 있다. 결국 정확한 지도의 제작은 수없이 많은 거리와 방향 정보를 비교·검토하면서 지도 위에 옮겨본 전문적 경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고을에는 이런 전문가가 존재하기 어렵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고을지도를 제작하려는 국가의 의지가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을에서 직접 그려서 올려 보낸 대축척 지도이기 때문에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기존의 지리지나 지도에 없는 새로운 정보가 많이 첨가되었다. 둘째, 비록 정확성의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그림식 지도에 비해 거리와 방향의 대략적인 흐름을 잘 반영하여 그렸다. 이와 같은 장점 때문에, 이 지도첩 계통을 참고 자료 중 하나로 이용하여, 정철조(鄭喆祚)는 남북 약 2.5m에 이르는 정상기(鄭尙驥)의 대형 지도를 1769년 안팎에 2차례에 걸쳐 더욱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렸고, 신경준(申景濬)은 1770년영조의 명을 받아 모두 연결하면 남북 약 6m에 이르는 초대형 고을지도, 도별도, 전국지도를 그렸다.

참고문헌

『조선의 지도 천재들』(이기봉, 새문사, 2011)
『한국의 고지도 발달사』(이상태, 혜안, 1999)
「조선후기 방안식 군현지도의 발달 연구:『동국지도 삼』을 중심으로」(김기혁,『문화역사지리』 19, 2007)
「조선지도(규16030) 해설」(이기봉, 『조선지도』, 서울대학교규장각, 2005)
「군현지도의 발달과 『해동지도』」, (양보경, 『해동지도』해설․색인, 서울대학교 규장각, 60-73, 1995)
「18세기 비변사지도의 고찰-규장각 소장 도별 군현지도집을 중심으로-」(양보경, 『규장각』15호, 1992)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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