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조선시대 서울지도 중 가장 큰 지도다. 서울의 영역 중 기능과 인구가 밀집된 도성 안과 숭례문 · 돈의문 밖을 자세하게 그렸으며, 그 밖의 지역은 상대적으로 소략하게 묘사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0년 2월 11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제작자와 제작 시기가 적혀 있지 않다. 수록된 지명의 측면에서 볼 때 첫째, 1753년(영조 29)에 영조 어머니의 사당인 숙빈묘(淑嬪廟)가 육상궁(毓祥宮)을 승격된 사실이 반영되어 있고 둘째, 1764년(영조 40)에 세워지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사당인 수은묘(垂恩廟)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1753년(영조 29) 이전과 1764년(영조 40) 이후의 지명 변화는 반영되어 있지 않아 그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 위에 채색으로 그렸으며, 지도의 크기는 세로 188.0㎝ 가로 213.0㎝이다.
도봉산과 북한산을 비롯하여 서울의 권위 표현에 가장 중요한 산과 산줄기를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기법으로 그려 지도뿐만 아니라 그림의 속성도 강하게 담고 있는 작품이다. 여러 종류의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데, 다양한 기호를 사용하여 구별해주고 있다. 첫째, 유사시 서울을 방어하고 일상적으로는 경계 업무를 맡고 있는 훈련도감 · 어영청 · 금위영의 관할 구역이 파란색 점선으로 나누어져 있다. 둘째, 관청과 서울의 최고 행정단위인 5부(部)의 이름이 긴 사각형 안에 표기되어 있다. 셋째, 부 아래의 행정단위인 43방(坊)의 이름이 붉은색으로 채워진 긴 사각형 안에 기록되어 있다.
넷째, 방 아래의 행정단위인 329계(契)는 기호 없이 이름만 써 있고, 위쪽에 소속 방의 이름 중 첫 글자가 원 안에 표기되어 있다. 다섯째, 법적 행정단위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불렸던 동(洞, 골이라 불렀음)의 이름은 기호 없이 글자로만 표기되었다. 여섯째, 도로는 붉은색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실선의 굵기로 대로, 중로, 소로를 구별해 주었다. 여섯째, 하천은 두 줄의 검은색 실선으로 표시하였으며, 하천의 크기에 따라 굵기를 달리하였다. 그 밖에 주요 고개와 다리의 이름, 대군방 · 함춘원 등 주요 정보가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여러 정보에 대한 기호를 가장 체계적으로 사용한 서울 지도 중의 하나이며, 주변 산세의 표현에서 진경산수화의 회화적 기법이 가장 훌륭하게 담겨 있는 작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도성대지도」를 통해 18세기 정교한 대축척 지도의 발달과 우리식 진경산수화의 유행이 서로 결합되고 있음을 잘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