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과 하편 2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편의 촌리(村里) 항목에 조선시대 망우동의 범위가 나온다. 행정적으로 일패(一牌)에서 사패(四牌)까지 나누어져 있었으며, 자연 마을로는 새고개[新峴] · 방죽말[防築內] · 갓바위[韋巖] · 피굴[稷谷] · 도와리(陶瓦里) · 먹굴[墨洞] 등 6개가 나온다. 현재의 행정 단위로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 묵동 · 상봉동 · 신내동 · 중화동으로 편제되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0년 2월 11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동지의 편찬 경위를 특별히 밝힌 서문(序文)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가장 앞쪽의 망우동지 범례(忘憂洞誌凡例)에 각각의 항목을 설정한 이유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이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망우동은 도성에서 가까운 마을이기 때문에 조선의 건국 이후 여러 사대부 양반 가문의 세거지이자 무덤이 밀집된 곳이었고, 이와 같은 양반 마을의 전통을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편찬되었다.
필사본이며, 크기는 30.3×19.5㎝이다. 변란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행자수는 10행 22자이다. 본문은 계선이 있으며, 판심의 어미는 하향2엽화문어미(下向二葉花紋魚尾)다.
가장 앞쪽에 망우동의 범위와 산천의 흐름을 풍수적으로 그린「망우총도(忘憂緫圖)」, 세거 양반인 의령 남씨, 동래 정씨, 평산 신씨의 묘지 위치와 풍수 흐름도인 산국내도(山局內圖) 3장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서 망우동지의 목록과 범례가 나오며, 상편과 하편으로 이어진다.
상편에는 동명원위(洞名源委)-형승(形勝)-능묘(陵墓)-촌리(村里)-고적(古跡)-토산(土産)-동계원위(洞契源委)-동규(洞規)-제영(題詠)-향약(鄕約)-선생안(先生案)-시좌목(時座目)의 순서로, 하편에는 선배비장(先輩碑狀) 1개 항목만 수록되어 있다. 동명원위는 망우동 이름의 유래가, 형승은 산줄기, 물줄기의 풍수적 흐름과 경관이 뛰어난 곳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동계원위는 동계의 유래, 선생안은 망우동 출신 중 벼슬에 나간 사람의 명단, 시좌목은 동지가 편찬될 때의 동약에 참여한 인물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선배비장은 동지의 절반을 훨씬 넘는 많은 양으로, 신도비를 비롯하여 망우동 세거 양반과 관련된 비문에 기록된 여러 글을 모아 놓았다.
조선시대의 지리지는 주로 고을 단위로 편찬되었기 때문에 망우동지와 같은 마을 단위의 지리지는 거의 드물다. 또한 망우동지는 항목의 측면에서 양반 세거지의 여러 특징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도록 선별되었고, 내용 역시 고을 단위의 유명한 지리지 못지않게 충실하게 서술되어 있다. 동지의 희귀성, 항목과 내용의 충실성 등 모든 측면에서 조선 후기의 양반 마을에 대한 이해와 연구에 아주 소중한 역사 자료의 가치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