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군(大靜郡)은 제주도에 있던 전라도 소속 3개 고을 중의 하나로, 서남쪽의 서귀포시 대정읍의 보성리와 인성리 일대에 중심지를 두고 있었다. 도안(都案)은 정기적으로 소속 군사들을 조사하여 성명, 나이, 거주지 등을 기록한 명부다.『대정군군병도안』은 대정군에서 작성하여 올린 것을 제주영(濟州營)에서 1869년(고종 8) 12월에 접수하여 1870년(고종 9) 1월부터 적용시킨 군사 명부이다.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 제주교육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9년 7월 24일에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연령 변화와 사망 등으로 군사 편제 대상자의 상황이 지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모든 도안은『대정군군병도안』처럼 정기적으로 새롭게 작성되었다.
닥종이[楮紙]에 필사한 1책(65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로 35.0㎝ 가로 26.3㎝이다.
총 1,900명의 각종 군병이 군병의 종류에 따라 역할-무기-이름-나이-아버지-거주지 등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대정읍성의 성정군(城丁軍은 크게 장교인 성장(城將), 초관(哨官)을 따라다니며 돕는 차비군(差備軍), 성가퀴(垜堞)를 수비하는 일반 병사인 타병(垜兵)으로 이루어져 있고, 총 337명이었다.
기마군을 담당하는대정군의 마대(馬隊)는 좌마대와 우마대 2초(哨)로, 초 밑에는 3기(旗), 기 밑에는 3대(隊) 등 총 18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총 262명이었다. 제주영의 지방관을 구성하는 속오군(束伍軍)은 5부(部)로, 부 밑에 좌우사(左右司) 2사(司), 사 밑에 5파총(把摠), 파총 밑에 10초 등 총 50초(哨)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중에 대정군에는 우사(右司) 파총의 5초가 할당되었고, 총 655명이 편성되었다.
대정군의 관아에 딸린 아전(衙前)과 관노(官奴), 사령(使令) 등으로 이루어진 군수수졸질(郡守隨卒秩)은 활을 사용하는 업무(業務) 18명과 환도(還刀)를 사용하는 각종 차비군 101명 등 119명으로 구성되었다. 대정군에 속한 군사 기지인 차귀진(遮歸鎭)과 모슬진(摹瑟鎭)에 진성(鎭城)이 있었는데, 이를 지키는 방군(防軍)과 보초를 서는 파수(把守)의 군병이 기록되어 있다. 차귀진의 군병은 방군 81명과 파수 47명 등 총 128명이고, 모슬진의 군병은 방군 69명과 파수 47명 등 총 116명이다. 굴산봉(堀山烽), 이두봉(伊頭烽), 모슬봉(摹瑟烽), 저별봉(貯別烽), 당산봉(堂山烽) 등 5개 봉수에는 별장 6인씩 30명과 오장(伍長), 봉군(烽軍), 보인(保人) 각 12명씩 60명 등 총 90명의 군병이 기록되었다.
그 밖에 변수(邊水), 대포(大浦), 당포(唐浦), 산방(山房), 무수(無水), 서림(西林), 우두(牛頭) 7개 연대(煙臺)에 별장과 오장 각 12명씩 84명, 특수 지역의 파수로 동면(東面), 성천(星川), 중면(中面), 범천(犯川), 서림(西林)에 44명이 기록되어 있다.
19세기 말 제주도 대정군의 군병 상황을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조선의 군사 편제 및 도안 작성에 대한 연구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