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릉 ()

고려시대사
유적
고려 전기, 제9대 덕종의 비인 경성왕후 김씨의 왕후릉.
유적/고인돌·고분·능묘
건립 시기
고려 전기
관련 국가
고려
관련 인물
경성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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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질릉은 고려 전기 제9대 덕종의 비인 경성왕후 김씨의 왕후릉이다. 1086년(선종 3) 7월에 승하하여 질릉에 장례를 지냈고, 1096년(숙종 1) 덕종의 사당에 신주를 모셨다. 고려 전기에는 산직 장상 2명이 능을 수호하였으나 무신란 이후 왕후릉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여 능의 위치를 잃어버렸다. 2016년 남편인 덕종 숙릉이 발굴되어 그 근처에서 질릉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정의
고려 전기, 제9대 덕종의 비인 경성왕후 김씨의 왕후릉.
건립경위

경성왕후(敬成王后)는 고려 제8대 현종(顯宗)의 딸이자 제9대 덕종(德宗)의 제1비이다. 어머니는 현종의 제8비 원순숙비(元順淑妃) 김씨(金氏)인데, 외가의 성을 따라 김씨로 하였다. 1086년(선종 3) 7월에 세상을 떠나니 선종이 왕실법도에 따라 장례를 치르고 능호를 질릉이라 하였다. 1096년(숙종 1)에 덕종의 묘(廟)에 주1하였다. 진전사원(眞殿寺院)은 기록에 전하지 않는다.

형태와 특징

질릉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므로 주2나 널방의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개성 북쪽 교외에 있는 덕종의 무덤인 숙릉(肅陵) 근처에 조성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2016년 북한 당국에 의해 태조(太祖) 현릉(顯陵)에서 4㎞, 현종 선릉(宣陵)에서 1.6㎞ 떨어진 위치해 있던 해선리 1릉과 해선리 2릉을 발굴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덕종 숙릉의 존재가 밝혀졌으며, 숙릉에서 동남쪽으로 250㎝ 떨어진 위치에 마주해 있던 능은 정종(靖宗) 주릉(周陵)으로 밝혀졌다. 고려시대의 왕후릉은 왕릉 근처에 조성하는 경향이어서 덕종 숙릉의 근처에서 질릉이 발견될 가능성은 있다.

변천

『고려사』 위숙군(圍宿軍)조에 의하면 질릉은 산직장상(散職將相) 2명이 능을 수호하였다. 고려 왕실은 능침제도를 마련하였고 왕릉의 관리는 제릉서(諸陵署)를 두어 왕릉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무신란 이후 조선시대까지 고려 왕후릉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여 질릉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동국통감(東國通鑑)』

단행본

장경희, 『고려왕릉』 (예맥, 2008)
한재렴, 『고려고도징』 (아세아문화사, 1973)

논문

허흥식, 「고려의 왕릉과 사원과의 관계」 (『고려시대연구』 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기타 자료

조선총독부, 『조선고분조사보고』(1916)
주석
주1

제례에서, 삼년상을 마친 뒤에 그 신주를 조상의 신주 곁에 모실 때 지내는 제사. 우리말샘

주2

묘에 대한 관습이나 제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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