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범민족대회는 남한과 북한 및 해외동포가 참여한 민간 주도의 통일행사이다. 1980년대 말 국제적 긴장완화 분위기 속에서 문익환 등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 본부(범민족대회 추진본부)’를 발족하였다. 북한도 이에 응하면서 재야 인사들을 평양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거부하면서, 1990년 8월 15일에 개최된 제1차 범민족대회는 서울과 판문점에서 각기 따로 개최되었다. 이후 1999년까지 범민족대회는 남-북-해외 3자 연대 방식으로 남(서울), 북(평양), 해외(주로 베를린)에서 동시에 개최되었다.
정의
남한과 북한 및 해외동포가 참여한 민간 주도의 통일행사.
개설
역사적 배경
경과
그러나 한국 정부가 범민족대회 예비회담(1989년 3월)을 사전에 봉쇄하고 베를린에서 열리기로 한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 3자 예비실무회담(1990년 6월)을 거부하면서 범민족대회 개최와 관련한 논의는 남과 해외, 북과 해외 등 2개의 2자회담으로 진행되었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문익환 목사, 문규현 신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임수경(당시 외국어대학생), 황석영 작가, 서경원 국회의원(당시 평민당 소속) 등이 한국 정부의 허가 없이 북한을 방문하자 정부는 국가보안법의 적용범위를 확대하면서 재야세력들과 학생운동에 대한 전면 수사를 진행하고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과 전대협 지도부를 대거 검거했다. 공안정국의 형성으로 범민족대회 개최 논의는 난항에 접어들게 되었고 결국 1990년 8월 15일에 개최된 제1차 범민족대회는 서울과 판문점에서 각기 따로 개최되었다.
결과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8․15 범민족대회와 통일운동」(정해구, 『월간말』 9월호, 1990)
- 「범민족대회, 그 시작과 끝」(유인근, 『통일한국』 9월호, 1990)
- 「북한 ‘범민족대회’ 제의 공개서한」(편집부, 『월간말』1월호, 1989)
-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www.tongil-i.net)
- 통일부 통일교육원(unied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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