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북·미 미사일회담은 1996년 4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6회에 걸쳐 진행된 북한과 미국사이의 미사일 협상이다. 냉전의 해체와 함께 북한은 체제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핵무기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등 개발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핵문제를 접근한 이후 1996년부터 미사일회담을 시작하였다. 2000년까지 총 6차례의 회담을 거쳤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의 '악의축' 발언과 2002년 3월‘핵태세 보고서’ 등은 북·미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면서 북한 미사일 협상은 결렬되었다.
정의
1996년 4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6회에 걸쳐 진행된 북한과 미국사이의 미사일협상.
개설
역사적 배경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의 역사를 살펴보면, 1993년 5월 노동 1호 미사일(550km 비행, 최대 사정거리 1,300km)이 시험 발사되었고, 1998년 8월에는 대포동 1호 미사일(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광명성 1호’로 알려진 위성을 탑재한 최대사정거리 2,200km의 로켓)을 시험발사함으로써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2006년 7월에는 최대사정거리 6,000km의 대포동 2호 발사, 2009년 4월에는 인공위성 ‘광명성 2호’를 탑재한 최대사정거리 6,700km 이상으로 추정되는 3단 추진체 ‘은하 2호’가 발사되었다. 최근에는 2012년 4월 ‘광명성 3호’ 위성이 ‘은하 3호’에 실려 발사되었다. ‘은하 3호’는 김일성 생일 100주년 기념일인 4월 15일 하루 전에 발사되었지만 실패했다.
경과
북한은 초기 협상에서 장거리미사일 수출문제에 한정해 협상을 진행하고자 한 반면, 미국은 개발문제를 포함해 포괄 협상을 추구했다. 북한은 협상에서 “미사일 문제는 자주권에 속하는 문제로서 미국이 진실로 미사일 수출을 막으려면 하루빨리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미사일 수출중지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 회담이 진행되던 1998년 8월 31일 북한의 대포동 1호 미사일이 시험 발사되었다. 이어서 1999년 8월 18일 북한은 미사일 수출문제와 함께 시험발사 문제까지 미국과 협상할 수 있음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자, 미국과 북한은 9월 12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고위급 회담을 통해 대북 경제제재 해제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의 추가 시험발사 중단에 합의했다.
2000년 7월에 진행된 5차 회담에서 북한은 먼저 미사일 수출 중단 대신 3년 동안 매년 10억 달러씩 보상을 요구하였으나 협상은 결렬되었다. 다섯 차례 진행된 미사일협상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양국간 관계 진전과 제반 현안을 포괄적으로 다룰 고위급회담의 필요성이 높아져 갔다.
2000년 9월 27일에서 10월 2일까지 뉴욕에서 열린 고위급회담에서 양국은 사안별로 개최하던 과거 회담 방식에서 벗어나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및 수출중단,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제네바 핵합의 이행 등 양국간의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양측은 또 ‘국제테러에 관한 북 · 미공동성명’에 합의하고, 2000년 10월 9일∼12일 북한인민군 총정치국장 조명록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미국을 전격 방문했다. 이 사건은 북 · 미관계 사상초유의 일이었다. 10월 12일 발표된 북 · 미 공동성명(코뮤니케, Communique)에서 양국은 ①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 포기, ② 양국간 적대관계 청산, 미국의 대북 체제보장 및 경제지원, ③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을 위해 4자회담 등 여러 방안 활용, ④ 클린턴(Bill Clinton)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 준비를 위한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 등 북 · 미간 관계정상화의 계기가 마련되는 듯 했다. 그러나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는 등 미국 국내문제로 성사되지 못하자 북한 미사일 문제는 표류했다.
결과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북한개요 2009』(통일부, 2009)
- 『2008 국방백서』(국방부, 2009)
- 「제네바합의 이후 북ㆍ미관계 개선 실패 원인」(서보혁, 『통일정책연구』12-1, 2003)
- 『조선중앙통신』(1998.6.16)
- 국가기록원(www.archive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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