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대남 수재물자 지원은 1984년 8월 말과 9월 초 서울과 경기, 충청 지역에 발생한 최악의 홍수피해에 대해 북한이 남한 수재민들에게 수재물자를 제공한 일을 말한다. 당시 서울의 하루 최다 강우량은 294.8㎜로 한강이 위험수위인 10.5m를 넘었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이재민과 사상자를 내었다. 1984년 9월 8일 북한적십자회는 동포애와 인도주의 입장에서 남한의 이재민에게 수재물자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하였고 남한의 전두환 정부가 제의를 수락하였다. 북한의 대남 수재물자 지원은 그동안 막혔던 남북 간 대화와 교류의 물꼬를 다시 여는 계기가 되었다.
정의
1984년 8월 말과 9월 초 서울과 경기, 충청 지역에 발생한 최악의 홍수피해에 대해 북한이 남한 수재민들에게 수재물자를 제공한 일.
개설
역사적 배경
경과
북한의 수재물자 지원 제의는 전달인 1984년 8월 20일 우리 정부가 제의한 남북 간 교역과 경제협력 제의를 희석시키기 위한 선전 차원의 대응이라는 정치적 성격이 강했다. 당시 남북관계가 대결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자신들의 제의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북한의 제의를 즉각 수용하자 북한은 약속한 물자와 수송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과 협상을 벌였고 중국으로부터 일부 협조를 받는 등 수재물자 준비에 어려움을 겪었다.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남북은 수재물자 인도․인수 절차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였으나 최종적으로 판문점, 인천항, 강원도 북평항을 통해 들여오기로 합의했다.
결과
북한의 대남 수재물자 지원은 막혔던 남북 간 대화채널을 다시 여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수재물자 지원절차를 협의하기 위한 실무접촉 과정에서 남북 직통전화가 중단된 지 8년 만에 재가동되었다. 수재물자 인수작업이 끝난 후 우리 정부는 북한에 남북적십자회담과 남북체육회담, 남북경제회담 등을 제의했고, 1984년 11월 남북경제회담이 이뤄졌다. 1985년 4월 9일에는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 양형섭 명의로 당시 채문식 국회의장 앞으로 ‘남북 불가침 선언’ 채택과 관련한 문제를 논의하자며 남북 간 국회의원회담을 제의해왔다. 동년 5월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12년 만에 재개됐으며 9월에는 처음으로 남북 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러한 대화와 교류는 1986년 1월 20일, 북한이 모든 남북대화를 일방적으로 중단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김일성시대의 중소와 남북한』(오진용, 나남, 2004)
- 『조선일보』(2012.9.18)
- 『경향신문』(2009.9.28)
- 통일부 통일교육원(uniedu.go.kr/uni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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