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인민이 혁명적 군사사업의 주인이며 인민의 무궁무진한 힘과 나라의 모든 잠재력을 조직 동원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군사관에 기초해 예비전력으로 준군사조직을 제도화했다. 군사동원이 본격적으로 강화된 과정을 살펴보면, 1958년 중국인민지원군 철수를 계기로 1959년 1월에 ‘로동적위대’가 창설되고, 196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4대 군사노선이 제기되면서 ‘교도대’가 조직되었으며, 1970년 9월 학생군사조직인 ‘붉은청년근위대’가 창설되었다. 1972년 12월 채택된 사회주의 헌법에서 국방위원회를 신설함으로써 전인민의 무장화를 위한 군사동원능력의 극대화를 도모하였으며, 1988년 4월에는 예비전력을 효율적으로 통할지휘하기 위해 당 민방위부를 설치하였다.
예비전력의 지휘체계는 인민무력부와 민방위사령부로 2원화되어 있는데 교도대는 전시와 평시 모두 인민무력부 예하 후방군단의 통제하에 있으며, 로동적위대와 붉은청년근위대는 민방위사령부의 관할하에 있다가 전시에는 인민무력부의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다. 2008년말 현재 북한의 예비병력은 770여 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붉은청년근위대는 1970년대 로동적위대의 학생적위대로부터 분리되어 설립되었으며, 당중앙 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받았고, 1988년 당중앙위원회 민방위부가 설치되면서 민방위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붉은청년근위대는 반혁명 요소의 적발, 로농적위대 및 사회단체들의 사상적 선도 역할을 수행하는 인민군의 후비대이다. 학교 단위별로 중대 또는 대대급으로 조직이 편성되며, 총인원은 100여만 명이다. 매주 토요일 4시간씩 연간 90시간의 교내훈련과 중학교 5학년 재학시 여름방학기간을 이용하여 7일간의 붉은청년근위대 야영훈련소 입영훈련과 비상소집훈련 등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