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사 상원암의 오른쪽에는 용의 뿔처럼 생긴 용각석이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돌아서면 축성전이 나온다. 축성전은 불전이지만, 축원을 위해 왕궁에서 파견된 관리, 궁녀, 무당들이 주로 거처하였기 때문에 살림집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축성전의 기둥 상부 사이에는 고창을 설치하지 않고 판자로 막아 여기에 그림을 그렸다. 동쪽 날개집 벽면에는 화폭 중심에 소나무 두 그루가 서있는데, 소나무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폭포와 바둑 두는 모습이 있고, 오른쪽에는 머슴으로 보이는 소년이 학에게 먹이를 뿌려주고 있는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툇마루 왼쪽 날개집 벽면의 그림에는 산골짜기를 돌아오는 행렬이 보인다. 행렬에는 비단을 받쳐 든 사람이 서있고 그 뒤에 붉은색 옷을 입은 주인공이 보인다. 이 행렬도는 왕실의 영을 받은 관리가 축성전에 축원하러 오는 광경을 묘사한 듯하다. 행렬도의 오른쪽 면에는 수양버들 늘어진 냇가에서 중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한가로운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축성전현판기(祝聖殿懸板記)』에 의하면, 명성황후는 1874년(고종11)에 출산하고 그 이듬해 아이가 세자로 책봉되자, 세자의 장수를 빌기 위해 금강산과 묘향산 등 여러 명산에 절을 세웠으며, 부처에게 축원하기 위해 불전들을 지었다. 보현사축성전은 이때 지은 불전 중 하나로서 8천 냥의 왕실자금으로 10개월 만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보현사 축성전은 정면 5칸(16.13m), 측면 2칸(5.17m)의 본채에 좌우 한 칸씩의 날개집을 달아낸 ‘ㄷ’형의 겹처마(후면은 홑처마)합각집으로서 벽면은 판자벽으로 되어 있다. 축성전의 정면은 외목도리식 2익공, 후면은 단익공이다. 본채의 동쪽 1칸은 부엌이고, 나머지 4칸은 모두 온돌방이며,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양쪽 날개집은 본채의 툇마루와 연결되어 있다. 동쪽 날개집은 온돌방이며, 서쪽 날개집은 돌기둥 위에 세운 누마루로 되어 있다.
본채의 앞쪽 툇마루에는 기둥을 세우지 않고 긴 액방을 가로질러 앞을 시원하게 틔워 놓았다. 기둥 위치에는 포를 두었으며, 그 사이에는 화반을 배치하였다. 양쪽 날개집의 정면은 지붕의 박공이 보이게 하였으며, 건물은 모루단청으로 장식하였다. 축성전의 건물 바깥벽과 천장들에는 산수화, 무악도, 불화, 생활세태도, 성좌도 등 여러 주제의 그림들이 많다.
보현사 축성전은 가구 구성상 본채의 중앙 3칸에 툇기둥을 세우지 않고, 8.83m에 달하는 주칸을 창방으로만 결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천장과 벽체에 많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점도 이채롭다.
보현사 축성전은 조선 후기의 사찰 건축양식과 건축술, 불교미술을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사료이다. 북한의 국보급 제42호로 보존·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