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후기의 명필 이광사(李匡師)가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의 내용을 인용해 그림을 품평한 행서 서축(書軸).
구성 및 형식
내용
이광사 글씨 뒤에 운원(運元)이란 사람의 짧은 관기(觀記)에 “무신년 오월 어느 날 매우 더웠는데 윤원도(尹元道)와 함께 이 그림을 보니 어느새 서늘한 바람이 종이와 먹 사이에 휙 불어왔다.”는 내용이 있어 이광사의 발문과 함께 둘 다 귀신 그림을 감상한 뒤에 쓴 글임을 짐작케 한다. 관기를 쓴 운원은 이하곤(李夏坤)의 아들인 이석표(李錫杓)의 자(字)이다. 함께 그림을 봤다는 윤원도는 정제두(鄭齊斗)의 문인이었던 심육(沈錥)과 교유한 사이로, 심육의 『저촌유고(樗村遺稿)』에 문경 현감으로 있던 윤원도가 술을 자주 보내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었다는 오언율시가 실려 있는데다 심육이 이광사의 글씨 스승이었던 윤순(尹淳)과도 교분이 두터웠던 점을 고려할 때 윤원도 역시 이들과 함께 강화학파(江華學派)의 일원이었던 인물로 여겨진다. 관기를 쓴 이석표 역시 심육과 교유가 있었다. 관기의 무신년은 1728년(영조 4)으로, 이석표의 관기는 이광사가 그림을 보기 18년 전에 앞서 쓴 글씨임을 알 수 있다.
이광사가 그의 서예 이론서인 『서결(書訣)』에서 20대에 윤순에게 나아가 글씨를 배웠고 30대부터 왕희지를 독학했으며 40대에는 전예중비(篆隸衆碑)를 배웠다고 자술하였듯이 40대 초반에 쓴 이 『화기』에는 왕희지의 전형을 터득했던 면모가 잘 나타나 있으며 이광사 특유의 개성적 필치도 가미되어 있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저촌유고(樗村遺稿)』
- 『한국의 옛글씨』(문화재청, 예맥,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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