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상·중·하 3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198면으로 이루어진 서첩이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의 내용을 대자 행서로 쓴 “見龍在田 天下文明(현룡재전 천하문명)”을 제외하고 모두 전서로 썼다. 매 작품이 끝나는 부분에 시문의 제목 또는 이름과 자인 ‘원령(元靈)’·‘인상(麟祥)’을 써놓았다. 모두 친필로 썼으나 대자 전서 “읍창루(挹蒼樓)”는 목판에 양각으로 새긴 글씨의 탑본이다.
『이인상 전서 원령필(李麟祥 篆書 元靈筆)』은 영조 연간에 활동했던 문인서화가 이인상(李麟祥)이 중국과 우리나라의 시문을 다양한 전서(篆書)로 쓴 서첩이다.
이인상은 전서와 예서를 잘 썼는데 특히 전서는 소전(小篆)에서 종정금문(鐘鼎金文)에 이르기까지 넓게 익혔다. 법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호기(豪氣)있게 써서 기(奇)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위아래로 긴 소전의 자형에 비해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자형을 즐겼으며, 운필에 있어서도 둥글게 굽는 원필(圓筆)을 즐겨 썼다. 그의 서풍은 이한진(李漢鎭)과 유한지(兪漢芝)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전각(篆刻)도 잘했는데 추사 김정희는 이인상의 문자향(文字香)을 높게 평가하면서 “이인상의 전각은 이백년 이래 따를 사람이 없다.”고 상찬하였다. 이밖에 해서와 행서는 당(唐) 안진경(顔眞卿)의 서풍을 수용하였다.
『이인상 전서 원령필』은 상·중·하 3첩으로 표지에 ‘원령필(元靈筆)’이라 씌어 있으며 그 밑에 각기 상·중·하로 표시되어 있다. 장황 형식은 종이바탕을 첩장(帖裝)처럼 배접하고 이를 표지와 함께 선장(線裝)했는데, 상첩(上帖) 표지가 떨어져나간 것 외에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작품이 끝나는 부분에 시문의 제목을 쓰거나 ‘원령(元靈)’·‘인상(麟祥)’ 등 자와 이름을 써놓았다. 필적의 내용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시문으로, 『시경(詩經)』 국풍(國風) 중 「실솔편(蟋蟀篇)」을 비롯하여 위(魏) 혜강(嵇康)의 「증수재입군(贈秀才入軍)」, 숙종·영조 연간에 활동했던 이재(李縡)의 「경차퇴계선생병명(敬次退溪先生屛銘)」, 명(明) 왕양명(王陽明)의 「서신(書贐)」, 송(宋) 주희(朱熹)의 「존덕성재명(尊德性齋銘)」과 「윤군자상찬(六君子像贊)」 등이다. 이 서첩은 현존하는 이인상의 필첩 가운데 가장 많은 글씨가 실려 있어 그의 다양한 전서풍을 살필 수 있다. 이 서첩에는 정방형의 짜임에 획이 굵고 힘찬 필치의 전서, 획이 가늘고 일정한 옥저전(玉箸篆) 계통의 전서, 갈필(渴筆)을 사용한 특유의 운치 있는 전서 등이 다양하게 구사되어 있다.
현존하는 이인상의 필첩 중 가장 많은 글씨가 실려 있고 서풍 또한 다양하여 이인상 전서의 역량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