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전예(篆隸) 명필인 기원(綺園) 유한지(兪漢芝, 1760~1834)가 다양한 서풍으로 쓴 예서(隸書)를 모아놓은 서첩으로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24면의 절첩(折帖)이며, 제3·4면의 전서(篆書)를 제외하고 모두 예서로 썼다. 내용은 두보(杜甫)의 칠언율시 「차운구일(次韻九日)」시구(1·2면), 송(宋) 주희(朱熹) 오언시 「환가즉사(還家即事)」시구(3·4면), 주희 사언시 「지락재명(至樂齋銘)」(5∼14면), 송(宋) 양정수(楊廷秀) 칠언절구 「초하오수(初夏午睡)」(15·16면), 당(唐) 한유(韓愈) 칠언절구 「새신(賽神)」(17·18면), 작자미상 오언대구(19·20면), 진(晉) 곽박(郭璞) 사언시(21면), 위(魏) 혜강(嵇康) 사언시(22면), 당(唐) 이백(李白)의 악부시 「독락편(獨漉篇)」시구(23·24면)를 쓴 것이다.
『유한지 예서 기원첩(兪漢芝 隸書 綺園帖)』은 조선후기 전예 명필인 유한지(兪漢芝)가 다양한 예서풍으로 쓴 필적이다. 조선은 18세기 들어서면서 중국 고대의 전예(篆隸) 탁본이 들어와 이전에 비해 전예의 수준이 상당히 진전되었는데, 이인상(李麟祥)·송문흠(宋文欽)·이광사(李匡師)·조윤형(曺允亨) 등이 당시 전예로 유명했던 이들이다. 이후 이한진(李漢鎭)과 유한지 때에 이르면 고대의 전예(篆隸)를 본격적으로 익혀 더욱 고법(古法)에 충실한 서풍을 이루게 된다. 유한지는 이인상·이한진의 전예 서풍을 따르면서도 명료한 획법(畫法)과 안정된 짜임으로 기법적인 면에서 탁월한 수준을 보여 19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명필이 되었다. 그의 필적으로 서첩과 대폭(大幅)의 예서가 상당수 전하지만, 이 『기원첩(綺園帖)』처럼 다양한 서풍을 보여주는 예는 드물다. 동한(東漢) 시대의 예서비로 유명한 「예기비(禮器碑)」, 「을영비(乙瑛碑)」, 「사신비(史晨碑)」, 「장천비(張遷碑)」, 「조전비(曹全碑)」, 「하승비(夏承碑)」 등과 같은 다양한 필의(筆意)가 보이고 있어 유한지가 한예(漢隸)의 대부분을 폭넓게 익혔음을 알려주는 수작(秀作)이다. 서첩 중에는 고문(古文) 풍으로 쓴 전서도 함께 실려 있다.
19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전예 명필 유한지가 동한시대의 다양한 예서를 섭렵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