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지 예서 기원첩 ( )

유한지 예서 기원첩의 곡강이수
유한지 예서 기원첩의 곡강이수
서예
작품
국가유산
조선 후기 전예(篆隸) 명필인 기원(綺園) 유한지(兪漢芝)가 다양한 서풍으로 쓴 예서(隸書)를 모아놓은 서첩.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유한지 예서 기원첩(兪漢芝 隷書 綺園帖)
분류
기록유산/서간류/서예/서예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10년 10월 25일 지정)
소재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북16길 11 (월영동,경남대학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 전예(篆隸) 명필인 기원(綺園) 유한지(兪漢芝)가 다양한 서풍으로 쓴 예서(隸書)를 모아놓은 서첩.
구성 및 형식

조선 후기 전예(篆隸) 명필인 기원(綺園) 유한지(兪漢芝, 1760~1834)가 다양한 서풍으로 쓴 예서(隸書)를 모아놓은 서첩으로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24면의 절첩(折帖)이며, 제3·4면의 전서(篆書)를 제외하고 모두 예서로 썼다. 내용은 두보(杜甫)의 칠언율시 「차운구일(次韻九日)」시구(1·2면), 송(宋) 주희(朱熹) 오언시 「환가즉사(還家即事)」시구(3·4면), 주희 사언시 「지락재명(至樂齋銘)」(5∼14면), 송(宋) 양정수(楊廷秀) 칠언절구 「초하오수(初夏午睡)」(15·16면), 당(唐) 한유(韓愈) 칠언절구 「새신(賽神)」(17·18면), 작자미상 오언대구(19·20면), 진(晉) 곽박(郭璞) 사언시(21면), 위(魏) 혜강(嵇康) 사언시(22면), 당(唐) 이백(李白)의 악부시 「독락편(獨漉篇)」시구(23·24면)를 쓴 것이다.

내용

『유한지 예서 기원첩(兪漢芝 隸書 綺園帖)』은 조선후기 전예 명필인 유한지(兪漢芝)가 다양한 예서풍으로 쓴 필적이다. 조선은 18세기 들어서면서 중국 고대의 전예(篆隸) 탁본이 들어와 이전에 비해 전예의 수준이 상당히 진전되었는데, 이인상(李麟祥)·송문흠(宋文欽)·이광사(李匡師)·조윤형(曺允亨) 등이 당시 전예로 유명했던 이들이다. 이후 이한진(李漢鎭)과 유한지 때에 이르면 고대의 전예(篆隸)를 본격적으로 익혀 더욱 고법(古法)에 충실한 서풍을 이루게 된다. 유한지는 이인상·이한진의 전예 서풍을 따르면서도 명료한 획법(畫法)과 안정된 짜임으로 기법적인 면에서 탁월한 수준을 보여 19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명필이 되었다. 그의 필적으로 서첩과 대폭(大幅)의 예서가 상당수 전하지만, 이 『기원첩(綺園帖)』처럼 다양한 서풍을 보여주는 예는 드물다. 동한(東漢) 시대의 예서비로 유명한 「예기비(禮器碑)」, 「을영비(乙瑛碑)」, 「사신비(史晨碑)」, 「장천비(張遷碑)」, 「조전비(曹全碑)」, 「하승비(夏承碑)」 등과 같은 다양한 필의(筆意)가 보이고 있어 유한지가 한예(漢隸)의 대부분을 폭넓게 익혔음을 알려주는 수작(秀作)이다. 서첩 중에는 고문(古文) 풍으로 쓴 전서도 함께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전예 명필 유한지가 동한시대의 다양한 예서를 섭렵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옛글씨』(문화재청, 예맥, 2009)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유지복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