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약용 행초 다산사경첩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 다산초당의 사경(四景)을 읊은 시와 외척 윤규로의 아들에게 준 시문 등을 쓴 서첩이다.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다산초당의 경물들 가운데 차 끓이던 부뚜막인 다조, 약을 달일 때 사용하던 샘인 약천, 자신의 성을 새긴 바위인 정석, 연못에 조성한 석가산 등 네 가지에 대해 칠언율시를 짓고 행서로 써서 서첩을 만들었다. 시 뒤에는 윤종진에게 호를 지어주며 써준 호기 등이 있으며, 마지막에 소식의 오언율시 「권야」를 행초로 썼다. 대부분 연대가 기록되어 있어 정약용의 글씨체 변천과정을 살피기에 좋은 자료이다.
정의
정약용(丁若鏞)이 강진 유배시 다산초당(茶山艸堂)의 사경(四景)을 읊은 시와 외척 윤규로(尹奎魯)의 아들에게 준 시문 등을 쓴 서첩.
구성 및 형식
내용
다산초당의 사경을 읊은 4수 뒤로는 다산초당의 원래 주인 윤규로(尹奎魯)의 아들 윤종진(尹鍾軫)이 15세 되던 해인 1818년에 정약용이 그에게 ‘순암(淳菴)’이란 호를 지어주며 써준 호기(號記), 정약용이 유배에서 벗어난 뒤 1823년 초여름 옛 제자이자 윤규로의 셋째(字는 旗叔)와 넷째 아들 윤종진(字는 琴季)이 한강 상류인 다산의 집에 찾아 왔을 때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념으로 써준 글, 윤종진에게 독서하는 자세와 관련하여 써준 경계의 글, 윤규로 자제의 뛰어난 재질을 칭송한 오언시 등이 행서 또는 행초(行草)로 차례로 쓰여 있으며, 마지막으로 소식(蘇軾)의 오언율시 「권야(倦夜)」를 행초로 썼다.
정약용은 초년에 전대의 명필 이광사(李匡師), 강세황(姜世晃) 등의 서풍을 따르다가 강진 유배 이후로는 특유의 서풍을 이루었다. 그의 후반기의 글씨는 글자의 크기 및 필획의 굵기에 변화를 주어 자유분방한 필치가 더욱 드러나며, 먹을 듬뿍 먹은 습윤한 운필과 더욱 여유로워진 글자의 짜임을 보인다. 이 서첩에서도 강진 유배시절 이후 변모된 정약용의 서풍을 살필 수 있는데, 1823년(62세) 윤규로의 셋째와 넷째 아들에게 써준 행초 필적에서 이러한 경향이 잘 나타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다산사경첩』(강진군,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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