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순조 연간에 활동했던 문인서화가 신위(申緯, 1769∼1845)가 다양한 색지에 해서(楷書)로 쓴 천자문.
구성 및 형식
내용
이 『천자문』은 신위가 69세 되는 1837년(헌종 3) 9월 21일에 썼다. 서첩 표지에는 '천자문(千字文)'이라 쓴 제첨이 왼쪽 상단에 붙어있다. 첫 면에는 “천자문, 양원외산기시랑주흥사차운(千字文, 梁員外散騎侍郞周興嗣次韻)”을 세 줄에 쓰고 천자문 10자를 한 줄에 썼으며, 마지막 면에는 천자문 30자를 3줄에 쓰고 나머지 한 줄에 “정유구월입일일자하육십구수서(丁酉九月卄一日紫霞六十九叟書)”라고 썼다.
서풍은 당(唐) 구양순(歐陽詢)에 바탕을 둔 옹방강과 그의 아들 옹수곤(翁樹昆)과 유사한데, 추사 김정희 역시 1810년 청나라에 다녀온 뒤 한동안 따랐던 서풍이다. 신위의 해서 글씨는 옹방강에 비해 좀 더 부드럽고 단아한 필치를 보인다.
첫 면에는 인영(印影)이 여러 개 있는데, 원래 소장했던 덕수이씨(德水李氏)의 소장인과 근래의 소장자 신효충(申孝忠, 1934∼1986)의 소장인, 그리고 한학자 임창순(任昌淳)·이가원(李家源)과 서예가 김충현(金忠顯)·김응현(金膺顯)·이기우(李基雨)의 감상인이 찍혀 있다. 마지막 면에도 신효충의 당호 “집고헌(集古軒)”이 찍혀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의 옛글씨』(문화재청,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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