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기거랑, 형부시랑, 예부시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관직에 나아가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 군기주부(軍器注簿), 고주통판(高州通判)을 역임하였다. 이후 영청현(永淸縣, 지금의 평안남도 평원군 영유면)의 수령이 되었는데 마침 가뭄이 들자 토지를 개간하여 백성들의 곤궁을 덜어주었고, 요(遼)의 봉책사(封冊使) 일행을 잘 접대하였다. 그 공으로 접반사(接伴使) 소태보(邵台輔)의 추천으로 직사관(直史館)에 임명되어 『선종실록(宣宗實錄)』을 편찬하였다. 1093년(선종 10)에는 동계(東界) 지역이 기근에 시달리자 ‘7주 춘하번 동북면병마판관 갑장별감 겸 선무(七州 春夏番 東北面兵馬判官 甲仗別監 兼宣撫)’가 되어 곡식을 풀어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뒤에 금주(金州)의 수령이 되어서는 100여 위(位)의 신령(神靈)을 받드는 제사를 없애는 등 미신을 척결하기도 하였다.
이후 감찰어사(監察御史),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기거랑(起居郞), 형부시랑(刑部侍郞), 예부시랑(禮部侍郞) 등 요직을 거쳤다. 검교예빈경 행섭대부경(檢校禮賓卿 行攝大府卿)으로서 1105년(숙종 10) 6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묘지명집성: 제5판』(김용선, 한림대학교 출판부, 2012)
- 「고려시대 동래정씨가문 분석」(박용운, 『고려사회와 문벌귀족가문』, 경인문화사, 2003)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