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주(水州: 경기도 수원시). 자(字)는 여악(汝岳). 아버지는 중서시랑평장사 판병부사(中書侍郞平章事 判兵部事)를 지낸 최자성(崔滋盛)이고, 어머니는 경원이씨(慶源李氏)로 중서령(中書令)을 지낸 이자연(李子淵)의 손녀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하여 호부주사동정(戶部主事同正)이 되었다. 23세 때인 1121년(예종 17)에 국자감(國子監)의 여택재생(麗澤齋生)으로 뽑힌 다음 글재주가 뛰어나 재장(齋長)이 되고, 26세인 1124년(인종 2)에 과거의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이 때 지공거(知貢擧)는 중서시랑(中書侍郞) 김약온(金若溫), 동지공거(同知貢擧)는 병부시랑(兵部侍郞) 김부식(金富軾)이었다. 최유항의 동기생 37명 중 오인정(吳仁正)은 오세재(吳世材)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 보문각교감(寶文閣校勘)을 거쳐 내시성(內侍省)에 들어가 다른 유신(儒臣)들과 함께 4부 문적(四部 文籍)을 검열하였고, 왕명을 출납하였다. 대부주부 겸 직한림원(大府主夫 兼直翰林院),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충사관수찬관(充史館修撰官)을 거쳤다. 1135년(인종 13)에 묘청(妙淸)이 난을 일으키자 왕의 조서를 가지고 서경(西京)에 가서 투항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의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보좌할 관료를 뽑으면서 병부낭중 겸 대자사의랑(兵部郎中 兼大子司議郞)이 되었고, 이후 시위위소경(試衛尉少卿)에 이르렀다. 1144년(인종 22)에 비서소감 지병부사 겸 태자중윤(秘書少監 知兵部事 兼太子中允)이 되었다가 이듬해에 4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