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항

  • 역사
  • 인물
  • 고려 전기
고려 전기에, 대자사의랑, 시위위소경, 비서소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수주(水州)
  • 사망 연도1145년(인종 2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보문각교감|대부주부 겸 직한림원|예부원외랑|충사관수찬관|병부낭중 겸 대자사의랑|시위위소경|비서소감 지병부사 겸 태자중윤
  • 출생 연도1099년(숙종 4)
  • 출생지개경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용선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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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전기에, 대자사의랑, 시위위소경, 비서소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수주(水州: 경기도 수원시). 자(字)는 여악(汝岳). 아버지는 중서시랑평장사 판병부사(中書侍郞平章事 判兵部事)를 지낸 최자성(崔滋盛)이고, 어머니는 경원이씨(慶源李氏)로 중서령(中書令)을 지낸 이자연(李子淵)의 손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문음(門蔭)으로 벼슬하여 호부주사동정(戶部主事同正)이 되었다. 23세 때인 1121년(예종 17)에 국자감(國子監)의 여택재생(麗澤齋生)으로 뽑힌 다음 글재주가 뛰어나 재장(齋長)이 되고, 26세인 1124년(인종 2)에 과거의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이 때 지공거(知貢擧)는 중서시랑(中書侍郞) 김약온(金若溫), 동지공거(同知貢擧)는 병부시랑(兵部侍郞) 김부식(金富軾)이었다. 최유항의 동기생 37명 중 오인정(吳仁正)은 오세재(吳世材)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 보문각교감(寶文閣校勘)을 거쳐 내시성(內侍省)에 들어가 다른 유신(儒臣)들과 함께 4부 문적(四部 文籍)을 검열하였고, 왕명을 출납하였다. 대부주부 겸 직한림원(大府主夫 兼直翰林院),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충사관수찬관(充史館修撰官)을 거쳤다. 1135년(인종 13)에 묘청(妙淸)이 난을 일으키자 왕의 조서를 가지고 서경(西京)에 가서 투항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의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보좌할 관료를 뽑으면서 병부낭중 겸 대자사의랑(兵部郎中 兼大子司議郞)이 되었고, 이후 시위위소경(試衛尉少卿)에 이르렀다. 1144년(인종 22)에 비서소감 지병부사 겸 태자중윤(秘書少監 知兵部事 兼太子中允)이 되었다가 이듬해에 4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묘지명집성: 제5판』(김용선, 한림대학교 출판부, 2012)

  • - 「고려시대 수주최씨가문 분석」(박용운, 『고려사회와 문벌귀족가문』, 경인문화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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