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대자사의랑, 시위위소경, 비서소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후 보문각교감(寶文閣校勘)을 거쳐 내시성(內侍省)에 들어가 다른 유신(儒臣)들과 함께 4부 문적(四部 文籍)을 검열하였고, 왕명을 출납하였다. 대부주부 겸 직한림원(大府主夫 兼直翰林院),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충사관수찬관(充史館修撰官)을 거쳤다. 1135년(인종 13)에 묘청(妙淸)이 난을 일으키자 왕의 조서를 가지고 서경(西京)에 가서 투항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의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보좌할 관료를 뽑으면서 병부낭중 겸 대자사의랑(兵部郎中 兼大子司議郞)이 되었고, 이후 시위위소경(試衛尉少卿)에 이르렀다. 1144년(인종 22)에 비서소감 지병부사 겸 태자중윤(秘書少監 知兵部事 兼太子中允)이 되었다가 이듬해에 4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묘지명집성: 제5판』(김용선, 한림대학교 출판부, 2012)
- 「고려시대 수주최씨가문 분석」(박용운, 『고려사회와 문벌귀족가문』, 경인문화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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