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합주(陜州: 경상남도 합천군). 아버지는 문하시랑평장사 판호부사(門下侍郞平章事 判戶部事)를 지낸 이충(李沖)이며, 어머니 배씨(裴氏)는 좌사낭중(左司郎中) 배관(裴寬)의 딸이다. 장인은 상서우승(尙書右丞) 김신련(金臣璉)이며, 김신련의 딸 김씨(金氏)와 결혼하여 6남 4녀를 두었다.
조부음(祖父蔭: 할아버지의 음덕)으로 관리가 되었으며, 경령전판관(景靈殿判官), 추밀원당후관(樞密院堂後官)을 역임하였다. 홍주(洪州)의 수령으로 나가서는 관내의 도적들을 토벌하고 관개(灌漑)사업에 힘써 식량을 증산하였다. 그 공으로 감찰어사(監察御史)에 올랐으며, 이후 분사호부원외랑(分司戶部員外郞), 삼사판관(三司判官), 안서대도호부부사(安西大都護府副使), 이부시랑(吏部侍郞),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쳤다. 1176년(명종 6)에는 수사공 상서우복야(守司空 尙書右僕射)에 오르고, 이듬해에는 은청광록대부 수사공(銀靑光祿大夫 守司空)이 되었다. 1179년(명종 9) 금자광록대부 수사공 특진 상서우복야 태자소보(金紫光祿大夫 守司空 特進 尙書右僕射 太子少保)로 은퇴하였다.
수령직을 2차례, 염찰사(廉察使)직을 4차례 거치면서 치적을 쌓았고, 1172년(명종 2)에는 하상존호사(賀上尊號使)로 금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성품이 침착하고 신중하며 도량이 넓어서 무신정변 때 해를 입지 않고 1품직까지 오를 수 있었다. 1180년(명종 10) 68세로 사망하자, 개경 남쪽 진봉산(進奉山) 기슭에 장례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