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완산(完山: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자(字)는 비민(庇民). 아버지는 검교대자첨사(檢校大子詹事) 이언균(李彦均)이다.
어려서부터 외숙인 이지명(李知命)에게 학문을 배웠다. 1160년(의종 14년) 17세의 나이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몇 년 뒤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후 안변대도호부판관(安邊大都護府判官), 첨사부녹사(詹事府錄事)를 역임하였다. 당시 집권자인 최충헌(崔忠獻)의 표창을 받아 중서주서(中書注書)로 발탁된 다음, 우정언 지제고(右正言知制誥),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형부 · 호부 · 예부 원외랑(員外郞) 등을 거쳤다. 60세 되던 1213년(고종 즉위년)에 사망하자 송림현(松林縣) 법운산(法雲山)에 장례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