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택춘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호부원외랑, 수안궁부사, 예빈경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원(南原)
  • 사망 연도1254년(고종 4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온수군감무|좌우위녹사참군사|경희궁부사|호부원외랑|수안궁부사|예빈경
  • 출생 연도1172년(명종 2)
  • 출생지남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용선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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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호부원외랑, 수안궁부사, 예빈경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원(南原: 일명 帶方郡). 선대는 본래 경주김씨(慶州金氏)인데 남원으로 이주하여 양씨(梁氏)로 성을 바꿨다. 처음 내시(內侍) 김수(金脩)의 딸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큰 아들 양안기(梁安其)는 원오국사(圓悟國師) 천영(天英)이다. 부인 김씨가 사망하자 별장(別將) 배씨(裴氏)의 딸과 재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60세가 다 되어 온수군감무(溫水郡監務)로서 처음 벼슬하였다. 무신집권자인 최우(崔瑀)가 선원사(禪源寺)를 창건할 때에, 아들 양안기 곧 천영이 승려를 선발하는 일을 주도한 공로로 좌우위녹사참군사(左右衛錄事參軍事)가 되고 경희궁부사(慶禧宮副使)의 녹봉을 받았다. 70여 세에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에 오르고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다. 최항(崔沆)이 집권하게 되자 수안궁부사(壽安宮副使)가 되었다가 흥왕도감(興王都監)으로 옮기면서 왕에게 알려 종신토록 녹봉을 받게 하였다. 조청대부 예빈경(朝請大夫 禮賓卿)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은퇴하였다. 1254년(고종 41)에 83세로 사망하자 수양산(水陽山,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신리 소재)에 장례지냈다.

참고문헌

  • - 「양택춘 묘지명」(김용선, 『고려묘지명집성: 제5판』, 한림대학교 출판부, 2012)

  • - 「원오국사의 부 양택춘묘지」(허흥식, 『고려불교사연구』, 1986)

  • - 「고려 수저의 형식분류」(이난영, 『역사학보』67,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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